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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올해 26인데 진짜 버라이어티한 인생을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지금부터 쓸 얘기는 버라이어티한 인생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일들중에 하난데 때는 내가 19살 고3일때 일이다.난 초중고등학교때 전교 5등 이하로 내려가본 적이 없었고 담임은 스카이쓰라고 지랄 발광을 했는데난 내 꿈이 있었기 때문에 인서울 건축대에 원서 쓸 준비 다 해놓고 고3임에도 불구하고 반백수처럼 살았다(근데 통수맞아서 재수함ㅋ).그렇게 공부는 했지만 반백수처럼 살다보니 시간이 미친듯이 빠르게 지나가더라 ㅋㅋㅋ눈떠보니 추석이더라. 사건은 추석에 벌어진다.우리집이 …
지금은 3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시점에...10년이 지난 썰을 하나 써볼까 한다... 뭐 혼자 간직해도 되지만 언젠가 한번 써보고 싶었던... 우선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형제라서...난 동생으로 5분 차이로 태어났다...일란성 쌍둥이도 알다시피 얼굴이 정말 같지만...살다보면 환경이나 등등에 의해 헤어스타일이나 그런게 조금씩 달라지긴 하는데 우리 형제는 헤어스탈도 거의비슷해서 구분할수 있는건 안경을 쓰는거랑 한명이 연하게 염색을 했다는거 빼곤 몇번 봐서는 구분이 안갈정도로 똑같은 형제였음... 내 쌍둥이…
아주 오래전 이야기다그냥 그런 일도 있었구나 하는걸로 읽어주기 바란다. 내가 자란곳은 작은 어촌마을이였는데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안계셨고 어머니와 세살 위인 형, 나 이렇게 셋이서 방 하나에 부억 하나가 달린오막살이에서 살았는데 내가 20살 되었을때 어머니가 어떤 여자를 데려와 형과 결혼할 여자라며 같이 지내게 되었다넷이서 한방에 자게 되었는데맨 아랫목에 어머니가 자고 내가 그옆에 그리고 형, 형수 순서로 자게됐는데어느날 자다가 보니까 형이 형수랑 하고 있었는데 말로만 듣던 ㅅㅅ를 하는걸 희미한 어둠 속이긴 했지만보는 순간 흥분되고 …
씨발년놈들아 저 배너 못 없앨거면닥쳐
글마무리는 되었지만 어쩐지 허전하다.그 이후 나는 한동안 형수와 있었던 여관에서의 일이 뇌리에 떠나지 않았다.꿈에서나 치렀던 아득한 일처럼 도저히 실감이 나지도 않는다.그것은나자신에 대한 죄의식 돌아가신 형님에 대한 깊은 죄의식과 교차하였다.한동안 자위(딸딸이)를할때마 들썩거리던 형수의 엉덩이와 알몸을 떠올리며 정액을 쏠 때의 이상야릇한 쾌캄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형님이 돌아가시고 얼마 후 형수가 재가 하였다는 소식이 어렴풋이 들려왔다.믿을수 없었지만 현실은그랬다.아마도 형님 돌아가신지 3개월도 안된 무렵 형수가 다른남자를…
사실 형수와 떡을 친건지 떡질을 받은건지 지금도 분간이 안되지만카운터에 계산을하고 내가 앞서 방에 들어가자 형수가 뒤따라 들어오고형수는 모든것을 받아들이는 눈치다.방에 들어서자 형수가 나더러 먼저 씻고 오라고 했다.정말 쭈뼛하고 순간 말할수없는감정이 밀려왔고 형님얼굴이 떠오르자 천벌을받을거 같은 기분인데의외로 형수님 표정은 담담하고 입가엔 알지못할 옅은 미소까지 비치고 있었다.형수의 표정에 안심이 되어 에라 모르겠다 옷을벗고 팬티만 걸치고 욕실로 들어갔다.몸을 씻고 나오자니 묘하다. 팬티를입고 나오자니 형수가 쳐다보고 있었다.내가 …
나이가 곰백살은 넘어도 암컷은 암컷이요 수컷은 수컷이니라 암컷은 수컷을 희롱하니 매료된 수컷은 이것이 꿀인가 곶감인가 당장 물불을 가리기 어렵다..사내들이 보유한 왕성한 정액이란 본시 방출 본능을가지고 있다. 그냥 일류 화냥년 계집년보지 그림놓고 치는 딸보다 길가는 돼지년 손을 빌려서라도 대딸이 더 찰지더라는 것도 그말인가이 글 짤리는거 아냐? 그건 내 모르겠고 알바도 아니다.본론이다.그때 내 옆에는 형수님이 타고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여자가 타고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안했다.그런데 그날따라 형수가 가운데 시트로 몸을기울이는듯 그러니…
제목에 형수와 떡을 쳤네 뭐네 설정해놓고 쓰잘데없는 개소리만 두장씩 늘어놓으니나도 성깔 급하지만 나보다 더 승질급한 놈들이 쌍욕질이 나올법도 하다.억지로 참고들 계시나? ㅋㅋ 차라리 꺼내지도 않았다면 몰라도 이미 엎질러진 물....마무리는 지어야 하고실망하더라도 좀 양해를 바라는 바이며 본문으로 들어가자면 역시 서두가 좀 들어간다.설상가상이라 그럴때 쓰는건가 그 무렵엔 사실 나도 여러모로 힘들때였다.시골 농사일을 청산하고 진로문제로 고민을 하다가 그 당시 내 수중에는 1톤차 하나와 얼마의 생활비가 전부였다.차에 간단한 가재도구와…
병원생활이 힘들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얼마의 시간이 될지도 모른 채 환자를 지켜보는보호자로서의 고통도 말할수 없었던 터였다.화상환자는 헛소리를 많이한다.잠이 들었는지 의식을 잃었는지 분간하기도 쉽지않을 때는 간호실로 달려간다.환자의 숨소리로 상태를 알아본다.가끔 알아듣지못할 몽환적인 혼자말을 하고때로는 아주 잠깐 깨끗한 정신이 돌아와서 사람을 알아볼때도 있다. 형님이 내 이름을 부르며 덕지덕지 붕대감은 손으로내얼굴에 무언가 묻었다고 닦아주겠다고....내 얼굴을 스다듬는 시늉을 한다."형님! 전 괜찮아요" 내…
난 형제가 없다 밑으로 여동생만 셋이고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가족관계는 그렇고 나이는 공개 안하는게 나을거 같다.형제가 없다보니 편할때도 있지만 살아오면서 외로울때가 많았다.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보니 친척이라곤 사촌형님 뿐이다.겨우 집안 대소사나 명절때 잠깐 얼굴을 내비치는 정도지만 가장 가까운 한분 계시던 사촌 형님이라 마음의 의지는 더없이 부모님이나 같다. 그 사촌형님께서 끔찍한 화재로 돌아가신지도 오래되었다.어느날 화마에 하나 뿐인 아들(조카) 마져 데리고 먼길을 가셨다. 평소 형님의 성격이 불같아 형수님이 맘고생 몸고생을 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