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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값 반만내요 - 상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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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1,133회 작성일 20-01-17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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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방값 반만내요 

민박은 사람이 넘쳐나서 방 얻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몇군데를 다녀도 방이 없기는 마찬가지라서 큰 맘 먹고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호텔로 숙소를 정해야겠다 싶어 로비에 들어섰다.

"어머, 김대리님 혼자왔어요?"
로비를 들어서는 순간 낯익은 목소리가 나를 반긴다.
엉겹결에 소리나는 쪽을 쳐다보니 사무실 노처녀 미스박이 앞을 가로 막듯 다가오고 있다.

"어, 미스박!, 여기 묵고 있어?"
"남자좀 꼬셔볼라고 혼자 왔어요. 호호."
"애구, 뭔 사람이 많은지 민박집 구하다 지쳐서 여기까지 왔는데, 방값은 얼마나 해?"
"하루에 16만원하데요."
"그렇게 비싸?"
"비싸다고요? 여기도 방 없어서 사람들이 그냥 가던걸요?"
"비싼 방도 없데? 그럼 차에서 자에겠네..."
"근데, 김대리님은 왜 혼자왔어요?"
"응, 친정에 급한 일 있다고 이틀후에 합류하기로 했어."
"어머, 그럼 이틀간은 자유네?"
"뭐, 그런샘이지."
"이틀후 서울로 올라갈껀데 내 방을 그때 인수하면 되겠네요."
"그정도로 방이 없데?"
"로비에 알아봐요. 정말로 방 없다면 프리미엄 주고 내방을 인수하세요. 호호"

로비의 아가씨는 VIP룸까지 동이나서 더 이상 손님을 받을 수 없다고 난감한 표정이다.
할 수 없이 바닷가를 벗어난 시내로 들어가서 여관이나 잡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허탈한 걸음을 옮기고 있다.

"내말이 맞죠?" 미스박이 다가오며 묻는다.
"민박도 호텔도 없으니 시내로 다시 나가서 여관방을 잡아야겠어.
나중에 봐."
"김대리님, 그럼 내 방에 짐 풀어요.
방 넓으니까 함께 써 보죠 뭐."
"처녀 혼자있는 방을 어떻게 써?"
"응큼한 생각만 안하면 되죠 뭐, 그리고 바닷가에선 절대 아는척 하면 안되는 거 알죠?"
"응큼한 생각 안하는덴 자신없지만 바닷가에선 절대 아는척 안할께."
"대신 방값 8만원은 절 줘요"
"그래도 되겠어?"
"그래요. 응큼한 생각은 암튼 절대 금물!!!"

미스박과 함께 차안에 넣어둔 짐을 호텔로 옮기기 시작했다.
식구들이랑 함께 먹고 입을 것을 가져왔기 때문에 짐이 여간 많은편이 아니다.
객실문이 활짝 열리며 미스김이 살던 방안이 눈에 확 들어왔다.
입던 옷가지가 방에 널려있는 걸로 봐선 몇일 동안의 자유를 만끽하며 청소 한번 안하고 살은 듯했다.
사내에선 항상 깔끔을 떨던 미스박이다.
내 짐을 한쪽 구석에 대충 정리하여 쌓아놓았다.
더블 침대위에 흐트러진 이부자리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방을 한번 정돈하니 깔끔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김대리님, 침대는 제가 쓸꺼니까, 잠잘땐 바닥에서 자세요."
"그래, 나 때문에 많이 불편하겠는걸?"
"그러니까 8만원씩 부담하는거에요.
딴 사람 만났으면 절대 같이 못쓰지만 김대리님은 제가 믿으니까..."
"알았어. 믿는대로 지켜줄게."

"수영복 갈아입고 나와요. 전 먼저 로비에 내려갈께요." 
휭하니 방을 빠져나가는 미스박의 뒷모습을 보며 나도 슬슬 옷을 갈아입고 1년동안 눈요기할 멋진 여자 모습을 훔치기위한 준비 작업으로 수영복을 갈아입었다.
돗수가 있는 썬그라스를 챙기며 치앙이 긴 모자와 슬리퍼를 짐 속에서 꺼내 챙겼다.
벽의 붙박이 거울을 통해 비친 내 모습이 약간은 배가 튀어나와서 올해도 멋진 여자애인 하나 건지기엔 어려울 것 같다.
어서 뱃살을 빼든지 해야지 도통 창피해서 해수욕장 활보가 혼자로선 부담스럽다.

로비에는 미스박이 쇼파에 앉아서 윈도우 밖에 펼쳐진 백사장의 모습을 훔치고 있다.
멋진 로맨스를 꿈꾸며 수십만의 인파가 몰린 바닷가에 외로운 승냥이가 되어 마누라가 오기전까지 이틀간의 자유를 만끽하려던 생각이 어쩌면 미스박의 감시 때문에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박스박, 수영하러 안갔었어?"
"배고파요. 어디가서 밥부터 먹고 가려고요."
"하긴, 나도 점심을 못챙겼네. 어디 맘에 드는집은?"
"없어요. 아무대나 가요. 우리~"
"우리? 듣기 좋네. 잠시간의 동맹이라..."
"호호, 잠시 동맹?"

어시장이 들어선 좁은 틈바구니를 헤집고 다니며 붂적거리는 인파 속에서 어떤 맛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지만 낑기고 채이며 밀쳐지는 맛에 일부러 이곳을 찾는 묘미가 있다.
허름한 매운탕집에 들어갔다.
가득메운 사람들 때문에 여기서도 한참을 기다려 자리를 잡았다.

"뭘 드실래요?"
"잡탕으로 얼큰한거 먹고싶은데..."
"얼큰한거 먹으면 쏘주 생각나지요?"
"바닷물에 들어갈건데 쏘주를 먹으면 큰일나지.
한잔 하고 싶어?"
"아뇨, 이따 저녁때 한잔할께요."
"메운탕거리를 미리 사다 놓을까?"

시장에 나온 김에 찬거리 몇가지와 메운탕에 쓸 야채를 샀다. 
캔맥주 대여섯병과 쏘주 몇병을 사고 담배 몇갑을 챙겨서 짐을 챙겨보니 한 짐이다.
할인마트에 익숙한 손씀슴이가 여기서는 돈이 너무 허무하게 쫄아들고 있다.

객실에 비치된 냉장고에서 손도 안될 음료수들을 모두 밖으로 꺼내놓고는 구입한 우리들의 물건을 가득 채웠다.

"물은 그냥 넣어둘걸 그랬나?"
"아휴~, 말도마요. 이 쪼만 것 한병에 천원씩달래요."
"뭐? 그렇게 비싸?"
"멋 모르게 첨 와서 냉장고를 축냈는데, 다음날 엄청나게 청구되더라구요.
전 호텔비가 비싸니까 써비스도 많구나 싶어서 막 먹었걸랑요."
"하하, 호텔이 첨인가?"
"와봤어도 돈 내는건 첨이었거든요."
"혼났겠군."

태양이 조금 수그러들 시간도 됐건만 바닷가는 아직 이글거리는 태양 만큼이나 뜨거운 모래가 달구어져 있었다.
샌달을 신지 않았다면 발에 화상이 날 정도로 뜨거운 모래를 덮고 코를 골며 자는 사람들의 몸은 불가사리 마냥 축 늘어져 다른 세계를 보는 것 같다.

찰랑이며 모래톱을 일으키는 파도가 있다.
살짜기 밀려드는 작은 파도가 내 발을 차갑게 적신다.
깊게 패인 발자국을 뒤로 남기며 서서히 인파 속으로 걸어갔다.
미스박이 어느 곳에서 눈을 번득이며 핸섬한 남자를 찾아 헤메고 있는지 알 바없다.
눈짓하며 내 맘을 흔들어 놓을 아름다운 여자가 이 속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는 서서히 바닷물속에 몸을 담그며 하얀 부표가 떠 있는 곳으로 힘찬 헤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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