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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홍색 단검 -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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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245회 작성일 20-01-17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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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홍색 단검 - 외전



엘븐 포레스트라는 거대한 숲. 그곳의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느지막하게 기울어져가는 햇빛이 나뭇잎들 사이를 점점이 통과하고 있었다.

“흐윽… 음… 앗…….”

대자연의 축복이라 불리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깨끗하고 아름다운 경치였으나, 그 포근한 풀밭 한쪽에선 어울리지 않는 여자의 신음소리가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근처. 다람쥐 한 마리가 쓰러져있는 남자의 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갔다. 남자는 죽은 듯이 꼼짝도 않고 있었고, 풀밭 위를 흠뻑 적신 피가 그가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를 말해주고 있었다.

남자의 귀는 뾰족했다. 인간의 피부보다 약간 더 뽀얀 빛을 발하는 엘프란 종족이었고, 그것은 한 명이 아닌 두 명이었다. 물론 둘의 공통점을 말한다면 서로 몇 발자국 떨어진 채 제각기 비슷한 자세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떨어진 곳엔 움직이는 엘프의 형상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알몸 상태로 신음소리를 내는 여자 엘프가 누워있는 남자 엘프 위에서 상하로 열심히 몸을 놀리는 중이었다. 누워있는 남자는 옆쪽에 쓰러져 죽어있는 자신의 동료들을 보면서 공포에 젖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아랫도리 위에서 피스톤 운동에 집중하고 있는 여자 엘프의 오른손에 들린 단검에 의해 명백히 증명이 되었다.

“으으응… 하아… 아아아… 앙…… 아흣….”

눈부시게 뽀얀 여자 엘프의 살결들이 나뭇잎들 사이로 부서지듯 내려오는 햇빛을 받아 미려하게 반사했다. 늘씬한 그녀의 허리가 남자 엘프의 자지를 박아대는 속도에 힘을 더해가고 있었다. 쑤욱, 퍽, 쑤욱, 퍽, 철퍼억, 부직, 부직……. 이따금씩 짹짹거리는 새소리가 자지와 보지를 박아대는 소리와 그녀의 신음 소리에 적당히 응수하고 있었다.

“하아악… 아아… 아아앙…….”

여자 엘프의 신음소리가 점차적으로 잦아졌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본능으로 자지가 꼿꼿하게 서버리는 것을 느끼며 아래 깔려있는 남자 엘프는 절망했다. 여자 엘프는 느낌이 오는 듯 남자 엘프의 가슴 위에 손을 내리뻗고 마구 엉덩이를 흔들어대었다. 양 옆으로 벌려진 그녀의 통통하고 풍만한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면서 자지는 더할 나위없이 여자 엘프 보지 속에 깊숙이 처박아졌다. 아름다운 금발 머리칼이 이리저리 춤을 추었고 그녀의 갈색 눈동자는 허공을 향한 채 남자 엘프의 자지를 한껏 느껴갔다.

“차마 눈뜨곤 못 봐 주겠군. 쓰레기 같은 년….”

저벅….

뒤쪽 높다란 나무 위 가지에서 조그맣게 중얼거리며 한걸음한걸음 발을 이동하는 남자. 그 또한 귀가 뾰족한 건 마찬가지였으나 다른 점이 있다면 피부가 남색 빛에 가까운 회색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날카로운 흰 앞머리칼 사이로 경멸어린 시선이 쏘아져내렸다. 그의 시선이 여자 엘프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있는 남자 엘프 시체 두 구를 슬쩍 훑어보았다.

“하이엘프들이 뭘 어떻게 당하든 내 알바 아니지만 저 년이 하는 짓거리는 마음에 들지 않는단 말이지…. 그래, 좀 더 처박아라. 좀 더…….”

“아아… 아아앗, 아앙, 하앙…….”

고조되어가는 여자 엘프의 신음소리에 집중하면서 그는 등 뒤로 슬며시 검을 뽑아들었다. 폭이 좁고 가벼운 에스터크였다. 다크엘프는 나뭇가지 위에서 흔들림 없이 세심하게 공격 자세를 취하고는 검 자루 부분을 꽉 쥐었다. 그의 예민한 시야는 여자 엘프의 동작 하나하나를 치밀하게 끌어담고 있었다.

“하아아아… 아아아… 아아아앙…!”

살짝 얼굴을 붉히고 있는 여자 엘프의 미간이 좁혀지면서 양 허벅지와 허리에 힘이 들어갔다. 아래에 깔린 남자 엘프의 몸이 경련하듯 움찔거렸고, 그녀의 보지가 꽉 맞물리며 남자 엘프의 정액을 끌어올렸다. 순간, 탓 하고 나뭇가지를 박차며 다크엘프가 찍어내리듯 떨어져왔다. 그의 에스터크는 정확히 여자 엘프의 정수리 부분을 겨냥하고 있었다.

푸욱-.

단련된 몸으로도 버티기 힘들 정도의 낙하를 한 그는 잠시간 자신의 어깨와 손아귀에 들어온 통증을 잊어야 했다. 예상했던 느낌이 전해지지 않은 채 허공만 갈랐기 때문이었다. 물론 에스터크 검날은 아래 깔린 남자 엘프의 배를 관통하고 땅에 박혔으나 애초의 목표가 아니었기에 실망스런 느낌만 남았다.

‘사라졌어?’

불과 1초도 안 되는 시간, 다크엘프는 재빨리 에스터크를 회수하고 주변을 휘릭 돌아보듯 살폈다. 그리고 서 있는 사람의 실루엣이 느껴진 순간 그는 무의식적으로 반 걸음 옆으로 슬쩍 피했다.

“우읏….”

누워있는 남자 엘프의 자지에서 정액이 공중으로 분출돼 다크엘프 옆으로 곡선을 그리듯 비산했다. 다크엘프가 멍하니 그걸 보는 짧은 사이,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여자 엘프의 목소리가 그의 정신을 돌아오게 만들었다.

“악취미시네요. 남의 오르가즘을 방해하시다니….”

“네년의 악취미만할까? 진홍색 단검. 명성이 꽤나 건실하더군, 다크엘프 마을에까지 전해지고….”

나체 상태로 십수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 선 여자 엘프는 칭찬에 감사하다는 듯이 생긋 웃었다. 그녀의 말을 맞받아쳤던 다크엘프 또한 히죽 웃었지만 그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거의 완벽하게 빈틈을 노렸는데, 치밀한 오르가즘 순간에도 이 여자 엘프에게 공격이 먹혀들지 않았다면…. 다크엘프는 자신의 경험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도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년이지, 저 엘프는…?

“정사란 것은 종족을 초월해서 모두에게 존중되어야 할 아름다운 거예요. 그 순간만큼은 가식이 없는 진실이기에 그 빛은 더욱 미려하죠. 신이 우리에게 내려준 최상급의 선물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풀들을 밟으며 사박사박 걸어오는 여자 엘프의 몸매는 적대심이 가득한 다크엘프가 보기에도 눈을 떼기 어려울 만큼 고혹적인 모습이었다. 로키는 하마터면 뒷걸음질칠 뻔하고는 에스터크를 들어올려 그녀에게 겨냥했다.

“다가오지 마라. 네년의 그 더러운 보짓구멍의 물들이 내게 묻으면 혐오감으로 하루 종일 씻어대야 할 테니까.”

하지만 다크엘프의 에스터크 끝은 자신도모르게 조금씩 떨리었고 여자 엘프는 여전히 한가로운 동작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다크엘프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똑바로 볼 수 없는 어정쩡한 감각에 휩싸였다.

‘젠장할, 뭐가 저렇게 예쁘지? 마치 몸 전체에서 빛이 발산되는 것 같잖아. 유부남인 나조차도 이러는데, 과연 수많은 남자 엘프들을 현혹시키고 이 짓을 해온 년이 틀림없군.’

그는 톡톡 튀듯 탄력있게 흔들리는 여자 엘프의 젖가슴을 못본 척 하며 소리 높여 외쳤다.

“전투 자세를 잡아라, 진홍색 단검! 오늘이야말로 네년의 목숨이 생과 사를 넘나드는 기묘한 모험을 할 순간이다. 이 어찌 즐겁지 않을까?”

‘생과 사를 넘나드는 기묘한 모험’의 구절은 다크엘프가 상대에게 목숨을 건 정식 결투를 신청할 때 즐겨 쓰는 말이었지만, 여자 엘프는 마치 시시콜콜한 게임을 하자는 말을 들은 것마냥 동요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단검을 쥔 오른손가락을 조금씩 꼼지락거릴 뿐 별다른 자세도 취하지 않았다. 문득 그녀의 시선이 다크엘프의 아래쪽으로 스르륵 내려갔다. 미려한 갈색 눈동자가 욕정으로 반짝였다.

“처음 기습 공격을 시도하던 기세에 맞춰 보면 참으로 우습기 그지없는 상황 같지만 뭐 그건 아무래도 좋아요. 대신 제가 이기면 당신이 아까 방해했던 그 정액을 받아내겠어요.”

다크엘프는 그녀의 보지 사이에서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물을 흘끗 보고는 침을 꿀꺽 삼키며 에스터크를 고쳐 쥐었다.



-----------------------------------------



똑똑.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책상에 앉아 집필하던 남자 엘프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거의 무의식적인 순서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리석으로 지어진 집 치고는 그다지 고급스러운 엘프 집은 아니었고, 나무 문을 열 때도 그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삐걱 하는 소리가 났다. 집 주인인 그를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건 역시 동족인 엘프. 남자 엘프 둘과 여자 엘프 한 명이었는데 모두 사무적인 차림을 하고 있었다. 집 주인인 엘프는 조금 긴장했지만 전에도 이런 방문이 몇 번 있었던 듯 익숙하게 물었다.

“정부에서 오신 겁니까?”

“안녕하시오. 에르휘 씨. 귀찮은 일인 줄 알고 있지만서도 현재 자꾸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서 불편하게 해드리는 점, 양해 바랍니다.”

에르휘라 불린 남자 엘프는 그들 중 한 명이 보이는 신분증과 문서를 훑어보고는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세요.”

세 명의 엘프는 에르휘가 안내하는 탁자와 의자에 둘러 앉았다. 곧 그가 내오는 차를 받았고, 여자와 남자 한 명은 제각기 에르휘가 내온 차를 조심스럽게 홀짝거렸다. 다른 한 남자는 차를 맛볼 생각은 일단 접어둔 채 자신이 갖고 온 문서를 계속해서 몇 장 넘기며 살펴보고 있었다.

에르휘가 자리에 앉자 그 남자 엘프는 손가락을 깍지 껴서 탁자 위에 올려놓곤 그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진홍색 단검이 검집에서 뽑힌 지 벌써 두 달이 넘었습니다. 피해 엘프는 며칠 전부터 보도되지 않는 걸로 봐서 인간 마을로 넘어갔거나 대륙에서 방황중일 걸로 추측됩니다. 다크엘프 마을로 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습니다만 적들이 가득한 곳이니만큼 가능성은 낮죠.”

“의외로군요. 그런데 신급 보도를 먼저 약식으로 전해들은 점은 흥미롭긴 합니다만 제가 뭘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은 끝난 걸로 압니다.”

에르휘는 메마른 음성으로 그렇게 말했고, 이번엔 여자 엘프 쪽이 차분하게 말을 건넸다.

“에르휘 씨도 아시다시피… 아니, 저희보다 더 잘 알겠죠. 현재 그나마 그녀의 정황을 알아보는 방법 중 유효한 것은 에르휘 씨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진홍색 단검은 추측을 추출할 수 있는 증거조차 거의 찾아볼 수 없게 움직이고 워낙 유동적이라….”

“저희는 마치 뜬구름을 잡는 듯한 기분입니다.”

여자 사무원의 말을 자르듯 단도직입적으로 내뱉은 남자 엘프. 그의 앞에 놓인 서류 옆 찻잔은 한 모금도 손을 대지 않은 상태였다. 그 남자 엘프는 여전히 손을 깍지낀 자세로, 그러나 자못 심각한 표정을 하며 에르휘에게 이어서 말했다.

“당신의 전 애인이 그녀였다는 것에 대해선 현재 당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조치가 하등 없으며, 현재로선 의미가 없다는 것쯤은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에르휘의 시선이 남자에게 꽂혔으나 처음 지적당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덤덤한 표정을 일관했다. 다른 남자 엘프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듯, 넌지시 말을 건넸다.

“더군다나 이번에 온 목적은 그녀의 발자취 따위를 찾으러 온 게 아닙니다.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과거를 저희에게 가능한 한 생각나는 대로 말씀하셔서 도와주셨음 하는 바람입니다.”

“굳이 도움을 요청할 것은 없네. 우리는 어디까지나 ‘가능한 한’의 전제로는 목표와 직접적 연결로만 관여한 것이니까.”

서류를 앞에 둔 남엘프가 그의 말을 의도에 맞게 정정했다. 진홍색 단검이 무언가 경고를 남기고 떠났다면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에르휘는 한숨을 쉬면서도 동의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턱을 살짝 손가락으로 긁고 있는 그의 모습은 의외로 그녀로부터 얽혀져 있지 않은 모습을 자아내고 있었다. 이제는 완전히 별개로 된 관계에서의 실상을 설명하려는 듯한 뉘앙스. 하지만 역시 조금은 착잡한 듯 뜸을 들였고, 에르휘의 입이 열릴 때쯤에서야 서류를 앞에 두고 있던 남자 엘프는 미지근해진 찻잔을 기울였다.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뭐 이런 얘기도 해야 할 때가 오고 있다는 것 정도는 저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진홍색 단검… 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저와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으며, 검집에서 뽑히기 전까지 저와 사귀었다는 사실 정도는 당신들도 알고 있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아름답기만 할 것 같던 그녀의 모습… 그러니까 미모와 겸해서 학식, 무술 대회 성적, 그녀 특유의 친절함과 일을 처리하는 능력, 수완 등 엘프 사회에서의 최고적 여성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그녀가 타락했던 건 한순간이 아닙니다. 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그녀는 아주 오래 전부터 본심이 외부로 드러나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애초에 이런 일을 저지를 계획을 세워왔다는 건가요?”

여자 엘프 사무원이 슬쩍 물었고, 에르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것은 긍정인지 부정인지도 판별하기 어려운 의미를 담고 있었다.

“계획… 이라고 해야 할지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그녀는 치밀한 계획 같은 건 세우지도 않았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모든 것은 그녀의 타고난 천재성에 의거한 것이었죠. 진홍색 단검은 어렸을 때부터 머리가 너무 좋았습니다. 신체도 잔병 하나 없이 건강했고요. 그 때문인지 그녀는 너무도 빠르게 삶에 익숙해졌고 배울 것을 순식간에 습득해버렸습니다. 성인이 되기도 전에 성인이 배울 것까지 모두 꿰어 찼고 무술도 더 이상 오를 데가 없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다른 남자 엘프가 의문을 꼭 제기해야겠다는 제스처로 손바닥을 들어보이며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그녀는 분명 부족할 게 없는 여자였지만 그 정도의 천재성은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에르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건 보통 사람들이나 나올 법한 당연한 반응이라고 지적하는 듯한 끄덕임이었다.

“실제로 진홍색 단검은 마법 학교나 지식의 성소에서 높은 성적을 차지했지만 1위는 그다지 많지 않죠. 그런데 이거 아십니까? 그녀는 일부러 2위에서 안주하기를 자처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충분히 1위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그렇게 의도적으로 했습니다. 무술 대회에서도 일부러 종종 지곤 했습니다만 나중에 저한테만 보여준 단검 실력은 그야말로 신이 내린 감각이 아닌가 하는 의혹은 느끼게 하더랍니다.”

에르휘는 잠시 숨을 들이쉬고는 ‘왜 그랬죠?’라는 의문을 참지 못하는 좌중에게 친절히 설명하는 분위기로 입을 열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시시한 것에 얽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녀는 남들이 신경을 잘 쓰지 않는 위치에서 자신만의 자유를 갖길 더 원했습니다. 자신의 천재성이 탄로나면 어떤 의무를 짊어져야 할지 눈에 훤했으니까요. 원하지 않는 의무와 권리를 쥐게 되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거든요. 그렇게 계속해서 본질을 숨겨오다가 어느 날 저에게 털어놓았습니다. 반복되는 삶 자체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한 거죠. 그리고 그녀는 마을에서 사라지기 전날 밤, 저와 정사를 나눈 후 제게 속삭였습니다. 자신은 더 짜릿한 경험을 찾아나가겠다고, 그리고 평범한 연애를 하며 정사를 나누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



검과 단검날이 부딪히며 밝은 대낮에도 얼핏 보일 정도의 불꽃을 튀겼다.

캉, 캉-!

챙챙챙챙챙챙-! 촤악-!

다크엘프는 여자 엘프의 단검을 간발의 차로 피한 후 온 신경을 집중해 그녀의 다리 쪽을 노렸다. 하지만 힘껏 휘두른 에스터크는 길게 자란 풀 몇 가닥을 베었을 뿐이었다. 이를 아득 물고 고개를 쳐든 다크엘프의 시야에 공중으로 뛰어오른 여자 엘프의 나체가 얼핏 보였다. 다크엘프는 재빨리 허리춤에서 비상용 단검을 뽑아들었고, 거의 동시에 포착된 목표로 쏘아올렸다.

‘잡았다-!’

단검은 확실하게 여자 엘프에게로 날아가 명중시켰다. 그러나 ‘명중했다’라고 느낀 건 다크엘프의 직감일 뿐이었다. 인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수 미터 가량을 도약한 여자 엘프는 가볍고 안정된 자세로 착지했고, 손가락 사이에는 다크엘프의 단검이 날 쪽으로 잡혀져있었다. 그녀는 그걸 마치 V자 표시를 하듯 들어보이며 생긋 웃었고 다크엘프는 자신도 모르게 멍청한 표정을 지어버렸다.

그녀는 문득 축축이 젖어오는 자신의 보지를 난처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는 양 손에 쥐게 된 단검을 능숙하게 돌려 고쳐 잡았다.

“꽤 하네요. 당신… 덕분에 더 재미있게 갖고 놀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았어요.”

여자 엘프는 이젠 못참겠다는 듯 눈을 내리깔며 얼굴을 살짝 붉혔다.

“원래는 빚만 받아내려 했는데… 조금 더 오래 있어주셔야겠어.”

다크엘프는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절망감과 스릴감을 느끼며 땀방울을 주륵 흘렸다. 또다시 ‘그래, 해보자구’라는 지지 않겠다는 특유의 날카로운 미소를 히죽 지으면서.



-----------------------------------------



밭에서 수확한 농작물은 꽤 무거웠고, 그것은 60세 중반을 넘어가는 할머니가 짊어지고 가긴 꽤 부담되는 양이었다. 할머니는 몇 걸음 전진하지 못하고 길가에 앉아 쉬었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이젠 거의 낫는 걸 포기하게 된 아픈 허리를 두들기면서.

“후우…….”

그런 할머니 곁으로 슬쩍 지나치듯 다가온 길고 미려한 다리가 보였다. 할머니는 무심코 고개를 들어보았다. 햇빛에 살짝 그림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그러나 종족 특유의 긴 귀는 할머니로 하여금 그녀가 누군지 짐작케 했다.

“어머, 이걸 다 짊어지고 가는 거예요? 세상에….”

여자 엘프의 붙임성 있는 음성은 할머니로 하여금 별로 놀라지 않게 했고, 그녀는 할머니 앞에 쪼그려앉았다.

“어디까지 가세요? 제가 들어드릴게요.”

“아니, 무슨 이런 걸 다…….”

“판매하시는 거죠? 시장 위치는 저도 알고 있으니까 할머니는 편하게 따라오세요.”

그리곤 할머니가 만류할 새도 없이 그 짐들을 모두 혼자서 들고는 앞장서서 걸어갔다. 할머니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런 그녀를 따라갔다. 겉으로는 계속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으나 어찌 됐든 한시름 덜게 된 것은 틀림이 없었기에 마음 속으로는 고마워하고 있었다.

목적지까지 도달했을 때 여자 엘프는 수확물 정리까지 손수 도와주었다. 할머니는 그런 엘프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감동한 눈길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원 요즘 시대에 인간보다 더 친절한 엘프를 보게 되다니 감동했구려. 나는 아가씨가 짐을 들어준 것보다 세상의 정을 느끼게 해주었다는 점에 더 고맙게 생각한다우.”

“별말씀을요.”

여자 엘프는 생긋 웃으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런 그녀가 시장을 빠져나오자마자 동네 아이들이 왁자지껄하게 몰려들었다.

“와, 예쁜 누나다-.”

“엘프 언니! 오늘도 같이 재미나게 놀아요.”

동네 꼬마들이 몰려들자 여자 엘프는 잘 있었냐는 인사로 손을 들어 보였다. 그녀의 손이 부드럽게 아이들 머리를 다독여주다가 곧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바뀌었다.

“자, 오늘은 이 엘프 누나가 술래다. 잡히면 간지럼태우기 벌칙을 선사해줄 거야♡”

“꺄하하-.”

여자 엘프는 양 손을 들어 꼼지락거리는 괴물 연기를 선보였고 동네 아이들은 제각기 흩어지며 ‘나 잡아봐라’를 외쳐댔다. 그녀는 적당히 그들을 쫓아다니며 놀아주다가 꼬마들의 성대한(?) 환호를 받으며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우아하게 거리를 걷는 그녀의 미려한 금발 머리칼을 바람이 살랑거리며 스쳐지나갔고,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런 그녀를 돌아보며 한마디씩 중얼거리듯 말했다.

“역시 숲의 요정이야. 걸을 때마다 나비의 정령들이 몸 주변을 맴도는 것 같잖아?”

“새삼스럽게 엘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말하기는. 그런데 역시 예쁘긴 예쁘지…. 마음씨는 또 얼마나 좋은지.”

여자 엘프는 그런 얘기들을 듣는지 마는지 모를 평온한 표정으로 일관하며 걸어갔다. 그러다 문득 남들의 시선이 사라진 즈음 자신의 아래쪽에서 무언가 느낌이 왔고, 그녀는 손을 슬쩍 치마속으로 넣었다. 이윽고, 빠져나온 손가락에는 묽은 액체가 반짝거리며 느지막한 오후 햇살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어머, 벌써부터 또 이러기는….’

그녀는 손가락의 액체를 입술로 쪽 빨고는 주변을 슬쩍 두리번거렸다.

‘어디 건질만한 남자 없을까?’

인간 로키와 정사를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여자 엘프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주욱 둘러보았다. 그녀의 깊은 갈색 눈동자가 타깃을 찾아 이리저리 탐색해나가고 있었다.



- behind story(외전)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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