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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_하_풋내기들 - 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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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837회 작성일 20-01-17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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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일까? 잠시 망설여지지만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있자니 금새 그 시절로 돌아가버린다.



“야 너 누나가 이야기 하는데 집중 안 할래?”



“아~ 그래서 뭐~ 요점이 뭔데?”



“아니~ 그냥 뭐 그렇다고~”



“그러니까 뭐가~”



재수를 결심하였지만 어머니 성화에 못 이겨 형식뿐인 소위 대학 면접이라는 것을 보았을 때 그녀를 처음 보았다. 겨울이지만 그다지 춥지 않은 날씨라 두꺼운 스웨터만 입고 별로 내키지 않는 발걸음은 무거워서 다른 학생들보다 2배는 느리게 걸어 교정에 들어섰을 때 그녀는 내가 지원한 학과의 피켓을 들고 있었다.



긴 생머리에 단정한 스커트를 입고 오버코트를 입은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것이 꾀나 부끄러웠나 보다. 어머니의 성화에 일찍 출발해 느린 발걸음으로 꾀나 지하철을 타고 멀리 왔음에도 조금 일찍 도착했나 보다.



정원이 꾀나 많은 학과인데도 두 줄로 늘어서 있는 학생들은 20명이나 되었을까? 그 뒤에 서서 한참이나 땅을 바라보며 흙장난을 하던 나는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가 그녀를 처음 보게 되었다. 그녀는 그렇게 피켓을 들고 있었다.



예쁘장한 얼굴이다. 화장을 하지 않아서일까? 아직도 어린 태가 난다. 누구일까? 누구일까? 면접을 보는 동안 내내 이 생각만 하다가 얼렁뚱땅 마치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정문 앞에 늘어선 학과 홍보 테이블에서 그녀를 보고는 선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하루 종일 멍하니 책상에 앉아 있다가 저녁을 먹으라는 어머니께 나는 재수를 하지 않고 그냥 그 대학에 가겠노라고 했고, 재수생활을 마뜩잖게 생각하시던 어머니는 잘 생각 하셨다면서 기뻐하셨다.



나는 그렇게 대학을 가게 되었다.



입학을 하고, 오리엔테이션에서 선배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나는 그녀가 2학년 생인 것을 알게 되었고 2학년의 과 대표인 그녀는 당시 내가 가진 입학선물(재수를 하지 않고 바로 집에서 꾀나 먼 학교를 지원한 내게 자취는 절대로 안 된다고 하시면서 사주신 자동차)을 과 행사에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나에게 잘 대해 주었고 우리는 선후배 사이로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뭘?”



“어머~ 너 내가 하는 얘기 들었어?”



“응”



“근데 뭐가 뭘~ 이야~ 찬이한테 어떻게 해야 하지?”



“사귀자고 했다며~ 좋으면 사귀는 거고, 싫으면 노땡큐~ 하면 되는걸 뭘 물어봐~”



“싫은 거는 아닌데~”



“그럼 만나~”



“좋은 것도 아니라서~”



“나참~ 애매하게 얘기하긴~ 찬이만 불쌍하네~”



“또 너랑 동기잖아~ 나는 연하라서 싫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애들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



“순자씨는 4학년인데도 명구랑 사귀잖아~ 그게 뭐~”



“아이~ 몰라~ 머리 아파~”



“그건 그렇고 여름방학에 그 얘기 하려고 불렀어? 그것도 이 시간에? 그럼 누나가 오든지~ 여기까지 나 기름이나 넣어줘~ 돈 없어 죽겠는데~”



“어머~ 나도 돈 없거든? 그러니까 학생이 무슨 차야~”



어제 찬이 녀석에게 사귀자는 대쉬를 받고는 조금은 들뜬 목소리로 아침부터 나를 불러내서는 무려 한 시간이나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그렇다고 내가 지영이 누나를 좋아한다고 고백을 한 적도 없고, 전혀 눈치를 채고 있지도 않지만 썩 기분 좋은 소리는 아니다.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



아니다. 찬이 녀석은 여자친구도 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귀던 한 살이 어린 지금은 고등학교 3학년인 수연이가 있다. 그 둘은 벌써 2년도 넘게 사귀고 있는 사이인 것을 내가 모두 알고 있는데 그 뻔뻔한 녀석이 지영이 누나에게 어제 대쉬를 했다.



아니다. 나보다 휠씬 용감한 놈이다. 그저 친하게만 지내면서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면서 다른 여자애들이나 건들이고 다니는 나 같은 놈보다야 찬이 녀석이 더 용감한 거다.



그런 탓일까? 지영이 누나는 점점 형처럼 굴려고 한다. 저번에 그 여자애 보다 더 먼저 만나던 애가 예쁘다면서 이제 여자애들 좀 그만 만나고 정착하라는 소리를 벌써 일주일째 하고 있다. 마침맞게 그 애에게 전화가 온다.



“여보세요?”



“자기야~ 어디야?”



“어디면 뭐하게?”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는데 커피숍의 사람들이 모두 쳐다본다. 기분이 조금 좋다. 삼 개월이나 과외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장만한 휴대폰이다. 자꾸만 귀찮게 하는 그 애가 조금 질리는 터라 대충 이야기 하고 끊어버렸다.



“나 같으면 당장 차버리겠다”



“뭐가~”



“여자한테 막하잖아~ 여자애들이 다 눈이 삐었지~ 너처럼 싸가지 없는 놈을~ 쯧쯧쯧”



하면서 혀를 찬다. 사실 이날 지영이 누나가 나를 찾아온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차와 운전기사가 필요해서다. 교수님 심부름으로 세미나 장소를 물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일은 조교를 시키는 것이 보통이지만 교수님이 다름아닌 지영이 누나의 작은아버지였다.



“부탁 좀 하자아~ 응?”



“들어주면 뭐 해줄껀데?”



“야 치사하게~”



“그럼 전 바빠서 이만~”



“야 알았어~ 알았어~ 너 해달라는 소원 하나”



“진짜다~ 나중에 딴말하면 알지?”



그리고 우리는 세미나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서 서울 근교에 있는 연수원에 다녀오게 되었다. 예약을 마무리하고 다시 서울로 도착했을 때는 벌써 어둑어둑해지는 저녁이었다.



“야 나는 성수동에 내려줘~”



“집에 가게?”



지영이 누나는 집에 가려는지 성수동에 내려달라고 했다.



“그럼 집에 가지 뭐해?”



“밥은?”



“집에 가서 먹을래~”



“웃긴다~ 그럼 난 누나 내려 주고 집까지 갈 동안 굶으라고? 하루 종일 운전시키구?”



“뭐 금방 가잖아~”



“지금 퇴근시간이라서 차 막히거든?”



“그래? 그럼 뭐 먹고 갈래? 뭐 먹고 싶은데?”



“뭐 딱히 먹고 싶다기 보다는 그냥 배가 고프네~”



“소원 대신 밥 사줄까?”



“뭐 이런데 소원 쓰라고?”



“그럼 뭐~? 너 말도 안 되는 소원 말하지 말고 그냥 착하게 밥이나 얻어 먹어라~ 응?”



“그럼 밥이랑 술이랑 내가 먹고 싶은 대로 다 사주나?”



“우리 집 앞에 통닭집 있는데 맛있거든~ 맥주랑 통닭! 그 이상은 나도 돈 없어서 안되”



하는 수 없다. 지금 가면 차가 막힐게 뻔하고 배도 고프다.



“콜~”



그래서 우리는 조금 이른 시간에 맥주랑 통닭을 시켜놓고 앉았다.

학교 얘기, 친구들 얘기를 하다 보니 술도 안주도 없다.



“다 먹었네~ 갈까?”



“어딜?”



“뭐 이제 퇴근시간도 아니고~”



“야 너 술먹었잖아~”



“그럼 어떻게 하라고~”



“음… 한잔 더 하구 우리 집에서 자구가~”



“누나네 집에서?”



“응~ 뭐 어때~ 우리오빠 군대 갔으니까 거기서 자면 되~”



“그래도 좀…”



“아 몰라 몰라 일단 한잔 더해~”



평소에 술을 잘 마시지 않는 누나가 왠지 오늘은 한잔 더 하자면서 조른다. 나도 일단 어정쩡한 지금 시간에 집에 가고 싶지는 않다. 아니 솔직히 지금 헤어지더라도 어디 나이트에서 놀고 있을 고등학교 동창녀석들과 놀다가 새벽에나 집에 들어갈게 뻔하다. 누나랑 이렇게 헤어지고 싶지 않다. 좀더 같이 있고 싶다.



그렇게 우리는 2차로 근처 호프집을 갔다. 안주와 술을 시키고 있으니 이야기가 다시 오늘 아침에 꺼낸 찬이 이야기로 돌아간다.



“내가 싫다고 하면 찬이가 상처 받을까?”



“아픈 만큼 성숙 하는 거야~ 왜 찬이 싫어?”



“음… 그냥~ 싫지는 않은데…”



“근데…”



“너는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그걸 왜 자꾸 나한테 물어~ 내가 사귀라고 하면 그럴꺼야?”



“그건 아니지만…”



“거봐~ 근데 왜 나한테 물어~”



“너는 내가 찬이랑 만나도 괜찮아?”



어라? 이 누나가 날 좋아하나? 정말?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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