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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새벽 - 1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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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810회 작성일 20-01-17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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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너 몰래 오늘 새벽에만 몇 번을 했을 것 같아?”



“글쎄.”



“잠깐 있어봐. 휴게소 갔을 때 처음으로 한 번, 다음 휴게소 갔을 때 화장실에서 두 번. 뒷좌석에서 했던 손장난 같은 일들은 세지 않는다고 하면, 기절해 있을 때 질펀하게 따먹은 것까지 세 번 정도 되겠네. 아 지금 산 속에서 뒹굴고 있을 테니, 그것까지 합쳐서 네 번. 네 번이다.”



창우가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정우는 창우가 내려놓지 않고 있는 칼만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언제 자신에게 날아와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이는 차가운 금속의 물질.



“별로 안 놀라네?”



“놀라야 하나?”



“그런데 난 정말, 그 때 그냥 가려고 했어. 성렬이 새끼 때문에 일이 이 지경이 되긴 했지만. 굳이 원망하고 싶으면 성렬이 새끼를 탓해.”



창우가 눈을 찡긋 거리며 식칼을 다시 들어 올렸다. 이제와는 판연하게 다른 태도에 정우는 흠칫 놀랐다. 그리곤 너무 놀라서 그렇다는 말로 대충 둘러댔다.



“줄곧 궁금해 왔던 거긴 한데, 애인 사랑하긴 해?”



“.....”



“화를 내면서 달려들 줄 알았는데, 이거야 원 도통 재미가 없네. 그래도 참 독특한 여자 같아. 네 여자친구.”



“독특... 이라.”



“응. 원래 좀 밝히는 타입 이야? 말하는 스타일만 봐서는 성격은 조금 있을 것 같긴 하지만.”



“그렇긴 하지.”



정우의 동조에 창우가 흥미롭다는 얼굴로 식칼을 들었다. 창우가 식칼을 들었다 내려놓을 때마다, 정우의 심장도 그것과 마찬가지로 뛰었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다리를 꼬고 도도한 척을 하길래, 나는 처음엔 성렬이 녀석이 이빨만 깐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지. 그런데 아까 성렬이 녀석이 뒷좌석에서 네 여자랑 실랑이를 벌이다가 그 잠바있지? 네 여자가 입고 있던 허름한 잠바. 그걸 강제로 벗겼는데, 브라자만 딱 하고 출렁이는 거야.”



그제야 정우는 왜 은비가 그 낡은 잠바를 입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정우의 시선은 여전히 시퍼런 식칼에 고정되어 있었다.



“운전이 제대로 안 될 지경이더라구. 일부러 신경을 쓰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나도 남자잖아? 예쁜 여자가 브라자 차림으로 다리를 꼬고 있는데, 마흔 살 먹은 아저씨가 어떻게 침착하게 행동할 수 있겠어. 어차피 나는 그 쪽에 관심이 없었으니까, 뒤에서 치고 박던지, 큰 소리로 싸우던지 어쩌던지. 그래도 성렬이 녀석이 자네 여자를 좀 심하게 다룬다 싶어서 슬쩍 고개를 돌렸을 땐, 성렬이 녀석이 조금 이성을 잃은 것 같아 보이더라구. 아. 지랄맞은 본성이 또 나왔구나 싶었지.”



“본성?”



“아, 그래도 나는 말려 보려고는 했어. 어차피 소용없었지만.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여자가 그나마 걸치고 있던 브라자와 그 속옷 같은 바지마저 벗겨진 다음이더라고. 벌거벗겨진 여자가 얼굴은 퉁퉁 부어서 뒷좌석에 눕혀져 있는데, 그러면서도 그 눈빛 하나는 살아 있는 게. 뭐 그래도 결국 암컷은 암컷이더라고. 결국은 가랑이를 활짝 벌려주는 그 꼴이. 여기까지만 들으면 완벽한 강간이겠지만.”



여기까지만. 칼든 자가 내건 전제조건이 처음으로 마음에 걸렸다. 정우는 시퍼런 칼이 아닌 창우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창우는 그런 정우의 태도에 구미가 당겼는지 살짝 뜸을 들였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알았다. 알았다. 알았다. 이게 뭔지 알아?”



“글쎄.”



“네 여자가 성렬이 밑에 깔려서 신음처럼 소리치던 말이야. 살려줘, 꺼져, 죽여 버리겠어. 그런 말이 아니라. 단순히 알았다. 그 말이 참 자극적으로 들리더란 말이지. 포기와 체념이라기 보단, 허락처럼 들렸거든.”



“허락이라.”



“아 내가 네 여자에게 한 짓이 딱 하나 있기는 해. 별건 아니고, 그냥 슬쩍 인상 쓰면서 차를 세우곤 이렇게 말해 줬거든. ‘이 새끼, 안 깰 거다.’ 이렇게. 아무리 그래도 그 표정은 여전히 해석을 못하겠어. 안심을 한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너란 놈을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던 건지.”



혼란스럽긴 정우도 마찬가지였다. 창우는 그런 정우를 천천히 지켜봤다.



“이래도 여전히 애인 얼굴이 보고 싶어? 그래도 그 정도 소원이라면 들어줄 생각은 있어.”



정우는 말없이 시퍼런 칼날 앞에 굴복하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를 진실을 마주한 채 정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창우는 손에 들린 식칼을 자신의 입술 쪽으로 가져다 대곤 그런 정우를 보며 웃었다.



“재미있는 놈이네. 혹시 내가 하는 말이 쌩 구라 같아? 애초에 너도 이런 상황을 원하고 있었던 건 아니야?”



정우는 삽시간에 표정이 굳어버린 창우의 표정에 흠칫 놀라며 서둘러 고개를 가로저었다. 창우는 담배 하나를 더 꺼내 자신의 입에 가져다 물었다.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오는데, 나는 가만히 운전만 했지. 그래도 그 신음소리가 제법이더라고. 듣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미치게 하더라니까? 참다 참다 슬쩍 고개를 돌렸을 땐, 정신이 아찔할 정도였지.”



정우는 간신히 은비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은비와 신음소리. 정우는 창우가 하는 말을 신뢰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것을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자신의 목숨줄이 그렇게 길진 않을 테니까.



“니 여자가 여기, 뒤 쪽 창문에 얼굴을 가져다 대곤 숨을 헐떡이고 있는 게 아니겠어? 튼튼한 뒷좌석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는 말이야. 성렬이 새끼는 그 위로 올라가서 마치 개처럼 네 여자의 구멍을 쑤셔대는데, 마침 도로를 달리고 있는 건 우리만이 아니라서. 우리와 나란히 달리는 자동차 속 수컷들 표정이 아주 가관이었어. 계탔지 뭐.”



정우는 멍한 얼굴로 창우를 쳐다봤다. 그러면서도 끝을 향해 달리고 있는 듯한, 그의 말을 들으면서 차분히, 그리고 아주 천천히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들어 슬쩍 힘을 넣었다.



“표정만 봐서는 아파하는 것 같은데, 분명 봤거든. 네 여자 엉덩이랑 허리가 아주 알아서 흔들리는 꼴이. 후우. 성렬이 새끼, 무식한 건 알고 있었지만, 계집을 아주 죽이려는 듯이 움직이더라니까. 그 새끼 좆도 꽤 훌륭하거든. 나이 40먹고 내세울 수 있는 건, 좆이 전부랄까?”



정우는 창우와 식칼을 번갈아가며 살펴봤다. 그래, 그렇게 계속 짖어라.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정우는 주문을 외우듯 자신에게 말했다.



“그래도 항문 따이는 건 한사코 거절하더라고. 아직 애인 뒷구멍은 개봉하지 않았나 봐? 미친 듯이 날뛰던데? 성렬이 새끼가 머리를 쥐어 채고, 뺨을 때려도 눈을 흘기면서 반대하는 꼴이 무서울 정도였어. 뭐 성렬이 새끼도 질렸는지 결국 포기하고 보지에다가 싸 버린 것 같긴 했지만. 그런데 너 말이야. 아까부터 쭈욱 지켜보고 있었는데.”



창우가 갑자기 말을 멈추곤 정우를 쳐다봤다. 정우와 창우의 두 눈이 서로의 그것을 향해 나란히 교차하고 있었다. 시간과 공간이 멈춘 듯한, 기분 나쁜 정적. 정우는 애써 침착하려 노력하면서 오른쪽 발에 힘을 실었다. 창우는 정우를 무색무취의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손에 꽉 쥔 그의 식칼이 정우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만들었다.



“발가락 꼼지락 거리는게 영... 거슬려!!.”



“악!!”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창우의 식칼은 정우의 왼쪽 팔을 날카롭게 파고들었고, 자신의 왼쪽 팔에 굵은 선혈이 알알이 맺히고 있었음에도 정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오른발을 들어 창우의 얼굴을 향해 힘껏 내쳤다.



창우는 별다른 비명 없이 얼굴을 감싸 쥐었다. 손에 쥐고 있던 식칼이 자동차 바닥에 떨어졌고, 정우는 서둘러 자동차의 잠금장치를 풀어 문을 열었다. 그리곤 서둘러 자동차 바깥쪽으로 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실수로 발을 헛딛여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제야 자신의 왼쪽 팔을 타고 강한 통증이 밀려옴을 느꼈다. 티셔츠자락이 굵은 핏빛으로 빠르게 물들어 갔다. 오른손으로 왼쪽 팔을 움켜쥐자, 정우의 손가락 사이로 빨간 핏방울이 끊임없이 흘러 나왔다. 정우는 자동차 타이어에 얼굴을 기댄 채 인상을 썼다.



“겁쟁이에 변태 치곤 제법이네.”



손에 칼을 든 창우가 어느 틈엔가 자동차에서 빠져 나와 정우의 앞에 섰다. 정우는 얼굴을 찡그리며 창우를 노려봤다. 빛에 그을린 창우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창우는 입맛을 다시며 천천히 정우에게 다가갔다. 미처 회수하지 못한 빚을 챙겨 받으려는 듯, 무거운 걸음걸이로.



“우리 빨리 끝내자. 피 많이 나네.”



창우의 발걸음이 갑자기 빨라졌다. 정우는 왼쪽 팔을 움켜쥐곤 있는 힘껏 뒤 쪽으로 몸을 피했다.



“쾅.”



금속의 파열음이 날카롭게 공중 속에서 흩뿌려졌다. 얼마나 세게 칼을 휘둘렀는지, 봉고차의 헤드라이트 위쪽에 날카로운 상처 하나가 새겨졌다. 정우는 목청껏 소리를 내질렀다. 은비가 되었든, 혹 누가 되었든 제발 이 목소리를 아무나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창우는 조금 뭉툭해진 식칼의 코 부분을 한 손으로 매만졌다. 그리곤 다시 입맛을 다시며 정우 쪽으로 걸어갔다.



“이래서 니들한테 남는 게 뭐야?”



“널 살려두어서 좋을 것 또한 없겠지.”



“병신 같은 새끼들.”



“큭. 너는 어떻고?”



정우는 창우의 눈치를 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창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정우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정우는 다시 바닥에 고꾸라졌지만, 차라리 그건 정우에게 있어 잘 된 일이었다. 창우의 식칼은 그대로 허공 속으로 미끄러져 갔고, 정우는 있는 힘껏 창우의 배를 발로 걷어찼다.



“윽.”



창우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약자에 의한 의외의 반격에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손에 꼭 쥐고 있던 식칼이 바닥 어딘가로 날아갔다.



“제법인데?”



창우는 애써 태연한 척 하려 애썼다. 정우의 심장은 미칠 듯이 뛰기 시작했다. 단순히 강도일 뿐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정우와 누군가의 명백한 오산이었다. 미친놈이다. 이놈들은 아주 미친놈들이다.



“괜찮아. 너 정도는 맨손으로도 충분히 죽여줄 수 있으니까 말이야.”



창우와 정우는 거의 동시에 바닥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역시나 거의 동시에 바닥에 떨어진 식칼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정우는 도망가고 싶었지만, 도통 방향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렇다고 멍하니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그렇게 정우에게도 선택할 수 있는 항목들이 하나 둘 소거되어 갔다.



“어떻게 죽여주면 좋을까? 눈깔을 두 손으로 쑤욱 하고 눌러줄까? 아니면 목을 졸라 숨을 못 쉬게 해서 죽여 버리는 것도 좋겠어.”



창우는 가만히 정우를 도발하기 시작했다. 정우는 묵묵히 그의 말을 듣고 있었고, 자신의 팔을 타고 흐르는 저릿한 고통을 애써 외면하려 노력했다.



“피가 많이 나네. 색깔이 참 예뻐.”



창우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정우는 자신의 왼쪽 팔에서 자신의 손을 치웠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것이 아니라, 피할 수 없다면 맞서야만 했다. 지난 29년의 인생과는 다른 인간이 되어야만 했다.



창우가 쏜살같이 정우 쪽으로 파고들었다. 정우는 창우를 피하긴 했지만, 그대로 다시 바닥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정우가 몸을 피하려 몸을 움직였지만, 발이 무언가에 결박되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다.



“생각보다 잘 피하네? 장난 놀자는 거지? 나랑 장난 놀자는 거지?”



정우는 자신의 발을 꼭 붙잡고 있는 창우의 얼굴을 나머지 발로 후려쳤다. 귓전으로 창우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정우는 있는 힘껏 앞으로 기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창우는 바닥에서 굴러다니는 각진 돌멩이 하나를 손에 들어 비틀거리며 정우에게 걸어갔다. 정우의 눈에 흙바닥에 굴러다니는 날카로운 금속 하나와 자신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사람의 그림자가 차례대로 들어왔다.



“죽어!!!”



창우가 손에 들린 돌멩이를 정우를 향해 휘둘렀을 때, 정우는 있는 힘껏 창우의 손을 피했다. 창우의 손에서 각진 돌멩이가 그대로 빠져 나갔지만, 창우는 그대로 정우의 몸 바로 위에 올라탈 수 있었다. 정우가 있는 힘껏 창우를 밀어내려 했지만,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띄운 창우가 자신의 왼쪽 팔을, 뼈가 으깨질 정도로 강하게 움켜쥐었을 땐, 별다른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짐승의 그것과도 같은 신음소리로 울부짖었다.



“아아아아아아!!!”



“그래, 그렇게 짖어. 네 여자친구도 아까 그렇게 울어댔으니까 말이야.”



창우는 정우의 목덜미를 우악스럽게 조르며 웃었다. 정우의 숨이 천천히 막혀왔다. 팔을 타고 전해져 오던 날이 선 고통은 점점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빠르게 연소되어 갔다.



“꺽... 끄억..”



“그래, 그런 식으로 살려고 아등바등 거려봐. 난 그 모습을 지켜보는게 참 재미있어.”



정우의 눈을 타고 투명한 액체가 천천히 흘러 내렸다. 팔에선 더 이상 어떠한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고 산소의 감촉 또한 느낄 수 없었다. 숨을 들이켜고 싶었다. 할 수 있다면 가득, 아주 가득. 아니 미량의 그것만이라도 좋다. 제발 숨을 쉬게 해줘.



그 존재를 항상 부정해 왔던 신을 향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살고 싶습니다. 살고 싶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정우는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서 결박되지 않은 오른손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거짓말처럼 손끝에 무언가의 감촉이 전해져 왔을 때, 정우는 바닥에 엎드린 채 그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곤 안간힘을 쓰며 그것을 부여잡으려 애썼다. 거짓말처럼, 신은 아직 정우를 버리지 않았다.



정우는 손에 잡힌 차가운 금속을 자신의 목덜미를 눌러 압박하고 있는 창우의 팔을 향해 던져 꽂았다.



“악!!”



정우의 목구멍을 타고 시원한 바람이 흘러 들어왔다. 이제 살 것 같다. 정우는 목을 매만지면서 퉁퉁 부은 눈으로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창우를 똑바로 쳐다봤다. 자신과 창우의 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식칼을 오른 손으로 꼭 쥔 채.



“아, 너 이 새끼. 아. 하아. 큭. 팔에 구멍이 났어. 이런 씹쌔끼.”



창우가 깊게 패인 자신의 손을 어루만지다가 정우를 노려봤다. 그리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돌멩이를 다시 집어 들었다. 정우와 창우는 다시금 서로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리고 두 사람을 감싸고 있는 공통된 생각은 단 하나였다.



‘이젠 끝내야 한다.’



봉고차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천천히 일어섰다. 서로의 팔을 타고 흘러내리는 굵은 핏방울. 흡사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창우는 독기를 품은 눈으로 정우를 노려보고 있었고, 정우는 이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생각에 천천히 자신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그리곤 이번엔 정우가 먼저 창우에게 달려갔다.



“악!!”



정우의 손이 연거푸 허공을 갈랐다. 창우는 정우의 날이 선 공격에 당황했지만, 곧 손에 들린 돌멩이로 정우의 머리를 연거푸 내리쳤다. 정우의 관자놀이를 타고 피가 빗방울처럼 터져 나왔고, 정우는 자리에 쓰러지면서도 있는 힘껏 창우의 두 다리를 향해 팔을 내 저었다.



창우의 바지춤이 빨갛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창우의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손에 들린 돌멩이를 정우에게 있는 힘껏 던져 봤지만, 정우는 그것을 피할 수 있었다. 창우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아.. 너.. 너 이 새끼!”



창우는 다리를 움켜쥐며 정우에게 소리쳤다. 정우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두 사람은 거친 숨을 내 쉬었다. 정우는 쉼호흡을 가다듬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우의 두 눈동자가 거칠게 떨리고 있었다. 초점 없는 정우의 두 눈은 정확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의 팔에서 흔들리고 있는 식칼은 창우를 조금씩 얼어붙게 만들었다.



정우는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는 창우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창우의 목덜미를 노려봤다. 천천히 식칼이 들린 자신의 손을 올려 들었고, 창우는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창우의 바지춤이 뜨거운 액체로 물들기 시작했다.



“악!!!”



정우의 손이 허공을 의미 없이 갈랐다. 창우는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고, 미친 듯이 울고 있는 창우를 곁에 둔 채, 정우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리곤 피로 물들어 가고 있는 창우의 다리를 발로 꼭 밟아 버린 채, 은비와 성렬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정우의 등 뒤에서 짐승의 그것과도 같은 창우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13부 end. 14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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