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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도 눈물을 흘린다 - 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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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729회 작성일 20-01-17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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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및 인천, 경기를 집어 삼킨 대명파는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폭력조직이었다. 그리고 준은 대명파를 이끌고 있는 리더였다. 뿐만 아니라 대명파를 역사상 가장 최고의 조직으로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만큼 준의 능력은 탁월했고, 어떤 대명파 보스들보다 리더십도 있었다.



그러나 준은 운이 없었다.



시대가 급 변화 하고 있었다. 과거와 달리 점점 폭력 조직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고, 국민들은 더 이상 폭력 조직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규모 폭력 사건을 일으키는 폭력조직을 소탕하라고 정부에 강력하게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시대의 변화에 대명파 역사상 최고의 보스라 불리는 준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모든 걸 내놓아야 했다. 아무리 그가 밤의, 어둠의, 음지의 황제라고 하더라도 민주주의 국가의 최고 권력기관이자 공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대통령에 맞설 수는 없었다.



대통령의 ‘범죄와의 전쟁’ 선포 후, 경찰들이 조직 폭력배를 강력하게 소탕하기 시작했다. 전국의 여러 조직에서 하루에 수십 명씩 조직 폭력배들이 체포되어 구속되기 시작했다. 물론, 전국 최고의 조직이라 불리는 대명파는 그 어떤 조직보다 경찰들에게 척결 대상 1호였다. 심지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끝나기도 전에 경찰들이 대명파의 지부들을 습격하기도 했다.



“씨발.”



사무실에서 호태와 대통령의 ‘범죄와의 전쟁’ 선포를 생방송으로 보던 준의 나지막한 욕설이었다. 채 방송이 끝나기도 전에 준은 사무실의 금고에서 현금을 전부 꺼내어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여전히 방송을 보고 있는 호태에게 소리를 쳤다.



“뭘 아직도 보고 있냐. 새꺄. 따라와.”



“네. 형님.”



준을 뒤따라 나선 호태는 어안이 벙벙했다. 20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지금의 상황이 매우 심각함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대통령의 국민 담화문은 결국 자신들을 잡아가겠다는 일종의 공개 협박이었다.



“다 버려도 좋다. 숨어라. 그리고 기다려라.”



준은 자신의 사무실을 나가면서 부하들에게 모두 숨어 지낼 것을 명령했고, 이게 곧 준의 마지막 명령이었다. 호태는 그런 준의 뒤를 여전히 따라갔다. 어디로 가는지 알길은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 믿을 건 준 뿐이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형님.”



“.........”



평소처럼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침착해 하던 준이 아니었다. 호태의 질문을 받았지만, 준 역시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했다. 서울을 벗어나자니, 검문에 걸릴 확률이 높았다. 말단 조직원이라면 모를까, 준은 대명파의 보스였기 때문에 경찰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일이었다.



“따라 와.”



“네.”



호태로서도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대한민국 경찰들이 자신을 추적하고 있다고 생각하자, 막상 이 넓은 서울에, 아니, 대한민국에 갈 곳이 없었다. 자신이 꿈꾸었던 밤의 절대강자, 그런 절대강자가 경찰의 추적에 갈 곳이 없는 처지라니... 한 편의 망상이었단 말인가?



“잘 들어. 당장 서울을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야. 하지만, 호태 너라면 가능성이 있겠지. 서열이 높긴 하지만... 아직 어리다. 어리기 때문에 경찰들이 너에게 소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아니지. 체포 1순위가 나 일 테니... 얼마간의 돈을 줄 터이니... 너라도 서울을 벗어나서 지방에 숨어라.”



“아... 아닙니다. 형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사람까지 죽여 본 경험이 있고, 대한민국 넘버원 조직의 서열 10위를 자랑하던 호태였지만, 막상 세상에 혼자가 된다는 느낌이 들자 두려운 마음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본의 아니게 준에게 의지를 하며 살았던 것을 호태 스스로는 몰랐던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 좋다. 함께 가도록 하지. 사실 이런 날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숨어서 지낼 곳은 마련하긴 했다만...”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준은 항상 이렇게 자신이 공권력에게 쫓기는 날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에는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였으니...



“가자.”



“알겠습니다.”



호태는 준을 따르기 시작했다. 택시를 타고 어느 정도 가다가 내린 준과 호태는 또 30분 정도 걸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어느 주택가였다. 준은 그 주택가 중에서 한 주택 건물에 들어갔고, 역시 호태가 뒤따랐다.



“대명파 공식 서열 10위가 되었을 때, 호태 너의 지금 위치일 때, 사 놓은 주택이다. 물론, 그 뒤로 한 달에 한 번 정도씩 방문해서 관리도 했었고... 들어가면 냉장고 안에 먹을 것도 어느 정도 있을 테니... 당분간 여기서 지내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생각해 보도록 하자.”



“네. 형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준이 준비한 주택에 들어서자마자 호태는 바닥에 푹 주저앉았다. 내심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면서 긴장을 했었고,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후들거렸기 때문이었다.



“냉장고에 가서 물 좀 가져 와.”



“네. 형님.”



준의 명령에 자리에서 일어난 호태가 냉장고로 향했고, 냉장고 문을 열자, 생각보다 꽤 많은 먹을거리가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통조림이었다. 물병을 집어든 호태가 냉장고 문을 닫은 후에 준에게 다가가 그것을 건넸다. 준은 물병 뚜껑을 열어 입에 대고 거칠게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이제 살 만 하군. 너도 마셔라.”



“네.”



준에게 물병을 건네받은 호태도 적당량의 물을 마셨고,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멍하니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준에게 물어볼 것이 많았지만, 분위기상 묻는 것이 좀 그러했다.



“묻고 싶은 게 많을 테지.”



“솔직히 그렇습니다.”



“간단히 정리하지. 우리 대명파는 결국 폭력 조직이고 법망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물론, 그동안 법망이 우리를 터치 안한 것도 있겠지만.... 풋. 대통령이 우리를 죽인다고 했으니... 잡혀가는 것이 맞겠지.”



“잡히면...”



“물론, 잡히면 모든 게 끝이다. 1년이고, 2년이고 일단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는 게 우리에게는 최선이겠지. 그런데 숨어 지내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는 겁니까?”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사회가 조용해지면... 우리는 제 2의 대명파를 다시 조직하면 되는 일이야. 문제는 그때까지 잡히지 않는 게 중요하지.”



“그렇군요.”



대통령이 직접 나섰는데, 잡히지 않는 건 매우 어려운 미션이었다. 더구나 준은 표적 1순위였다. 호태는 눈치 채지 못했지만, 준은 어느 정도 마음속으로 각오를 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어느 정도 있어야 할까요?”



“버틸 수 있는 데까지... 그건 나도 모른다. 호태 너처럼 처음 겪는 일이니까.”



대화를 나눌수록 상황이 암울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호태는 막막했다. 자신이 꿈 꾸던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결국에는 도망자 신세라니.



“쉬어라. 눈이라도 붙이고... 체력이 있어야 도망이라도 다니니.”



“네. 형님.”



머릿속이 복잡한 호태였고, 준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은 각자 머릿속으로 앞날에 대해 생각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 빠져 들었다. 긴장이 풀리고, 몸은 휴식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얼마만큼 잤을까? 갑자기 주위가 시끄러워지고, 주택의 바깥이 환해졌다. 황급히 정신을 차린 준과 호태는 상황 파악을 위해서 창문을 통해 밖의 풍경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둘이 있는 주택가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경찰이었다.



“아!아! 김민준, 너 거기 있는 것 아니까, 빨리 나와서 같이 가자. 버텨봐야 너만 손해니까.”



바깥에 있는 어떤 경찰 하나가 확성기에 대고 외쳤고, 그 말을 들은 준이 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호태에게 말을 했다.



“내 본명이 김민준이다. 크크. 젠장. 씨발. 이용당한 것도 모자라... 첩자가 있었구만.”



“형님... 이용은 뭐고... 첩자는... 뭡니까?”



“호태야.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다. 너라도 여길 벗어나라.”



호태는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준으로부터 그것을 들을 여유가 없었다. 그만큼 상황은 최악이었다.



“어떻게 벗어납니까?”



“그건 내가 만들어 줄 테니... 크크.”



“같이 잡히겠습니다. 형님.”



“아니다. 난 끝났다. 이번에 들어가면... 평생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고... 빛을 본다고 하더라도 그때가 60이 될지, 70이 될지 장담하지 못하겠구나. 너라도 가라.”



“그... 그래도...”



“내 말 기억 나냐? 넌 내 어릴 때 모습과 정말 비슷하다. 나도 너처럼 절대 강자가 되고 싶었고... 또 절대 강자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고작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이렇게 무너지는구나. 하지만... 너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다. 설령 절대 강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세상에서 똥밭을 굴러도... 살아갈 기회가 있다.”



“혀... 형님.”



말을 마친 준이 품속에서 수첩 하나를 꺼내었다. 그리고 수첩에서 한 장의 종이를 찢어 호태에게 건네었다.



“목포에 최서기... 그를 찾아가서 숨어라. 세상이 너를 잊을 때까지 숨어라. 그라면 너를 숨겨줄 것이다. 여기에 주소가 있으니...”



“혀... 형님.”



“그리고 내가 준 물건 가지고 있겠지? 이리 줘 봐.”



준의 요구에 호태는 잠시 망설이다가 품속에 가지고 다니는 사시미를 그에게 건네었다. 사시미를 쥔 준은 비장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호태야. 널 살리는 건 둘째 치고... 난 내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살지는 못하겠다. 내가 밖으로 나가서 시간을 벌면... 넌 뒤에 있는 창문으로 나가서 절대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달려라. 보니까... 이곳에 호태 네가 있는지는 경찰도 모르는 것 같구나.”



“형... 형님...”



“가.”



“형... 형님... 아니, 민준이 형.”



호태는 방금 전 알게 된 준의 본명을 불러봤지만, 돌아오는 건 그의 욕일 뿐 이었다.



“가! 새꺄. 그리고 목포에 최서기... 그 사람을 꼭 찾아가는 거 잊지 마라.”



말을 마친 준은 그대로 사시미를 들고 주택을 나섰다. 잠시 멈칫거린 호태는 곧바로 뒷 창문을 향해 주택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준의 말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김민준, 그 칼 내려 놔! 경고 한다. 내려 놔!”



“이 개새끼들아... 다 죽여 버릴 거야!!”



“으아아악.”



“경고한다... 내려... 발포!”



“씨발...새... 끼... 들....”



달리는 호태의 귀에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볼 수 없었지만 숨어있던 주택의 앞에서는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호태는 달리는 것을 멈추거나 뒤를 돌아볼 수는 없었다.



호태가 넘고 싶어 했고, 대명파의 역사상 최고의 보스라던 준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호태는 준의 말대로 경찰들의 감시를 피하며 열흘 만에 목포로 내려갈 수 있었다. 그 열흘 간 준의 죽음이 호태의 머릿속을 괴롭히긴 했지만, 괴로움에 빠져 살 수는 없었다. 준의 말대로 자신은 살아갈 기회가 있었으니...



준이 알려준 주소로 어렵게 최서기를 찾아가면서, 호태는 그가 누구일지 궁금했지만, 만나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었다.



최서기, 그는 호태에게 있어 준만큼 인생에 강력한 영향을 주는 인물이었다.



***



기철의 외침은 공허한 빈집만을 울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아무리 소리를 내질러도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기철의 눈은 곧 튀어나올 것처럼 TV 화면 속의 가면 쓴 사내를 쏘아보고 있었지만, 역시 그 뿐이었다. 오히려 가면 쓴 사내가 실실 웃으며 기철의 이런 모습을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안 돼... 제발....”



기철은 가면 쓴 사내의 비웃음을 보고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식했다. 엄청난 무력감이 온 몸을 지배하긴 했지만, 이대로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다시 한 번 침착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인 기철은 그제야 가면 쓴 사내를 쏘아보던 눈에서 힘을 풀었다.



[크크.]



기철은 가면 쓴 사내의 웃음소리가 거슬렸다. 아니, 그보다 가면 쓴 사내 옆에서 원피스가 찢겨진 채, 매끈한 몸을 드러내어 정신을 잃은 아내가 있다는 사실이 거슬렸다. 비록 아내가 브래지어와 팬티라는 속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래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에게 몸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기철로서는 큰 수치로 다가왔다. 더구나 가면 쓴 사내는 자신의 아내를 음흉한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지 아니한가. 가면 쓴 사내의 행동 때문에 기철은 마음속으로 분노가 치밀었지만, 표정으로는 큰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크크. 아주 좋은 몸이야. 살결도 매우 부드러울 것 같군.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빨아보고 싶은... 얼마나 맛있을까? 친구는 많이 맛을 봤겠지?]



“...........”



[표정관리 할 필요 없다네. 내가 친구라도 같은 마음이었을 테니까. 크크.]



“... 그만.”



[아내 이름이 차연희라고 하지? 자네보다 3살 어린 34살... 아직 애를 낳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아주 좋은 몸매를 가지고 있단 말이야. 아랫도리가 불끈 거리는군.]



“... 그만하라니까.”



[크크크. 친구가 화를 내니, 참 무섭단 말이야. 그래, 이만 해주지. 하지만, 나도 언제까지 참을 수는 없다네. 이런 멋진 여자를 두고... 가만히 있을 수 있는 남자란 세상에 몇 되지 않으니까.]



“약속을... 지키지 않을... 셈인가?”



[아니야. 약속은 지킬 것이네. 비록 첫 번째 게임은 친구가 패배했지만, 언제라도 기회가 있다네. 내가 게임에 패배하면, 자네의 아내를 그대로 보내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면 두 번째 게임에 들어가 볼까 하는데, 어떤가? 계속 하겠나?]



가면 쓴 사내의 말을 듣고 기철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더 이상 돌아갈 곳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아내를 구해야겠다는 생각만이 기철의 머릿속에 가득할 뿐이었다.



[좋아. 좋아. 이번에도 자네의 흥미로운 고백을 들어볼 것인데... 이번에도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면...]



채 말을 마치지도 않고 가면 쓴 사내는 자신의 오른 손에 들고 있는 칼로 정신을 잃고 의자에 앉아 있는 기철의 아내인 연희의 브래지어를 살짝 터치했다. 즉, 기철이 이번에도 가면 쓴 사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면, 연희의 브래지어를 잘라서 벗겨버리겠다는 가면 쓴 사내의 경고였다.



“... 휴.”



[긴장되나 보군. 그런 친구의 모습을 보면, 정말 아내를 사랑한다는 진심이 느껴지네. 아내를 얼마만큼 사랑하는가?]



“... 내 목숨만큼, 아니, 아내를 위해서는 내 목숨을 바칠 수도 있어.”



[크크. 그러한가? 그런데 왜 솔직하지 못하나? 아내를 구하고 싶지 않은가?]



기철은 가면 쓴 사내에게 ‘솔직 하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었다. 그런데 그가 말한 ‘솔직’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직까지도 가면 쓴 사내가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솔직’에 대한 뜻도 물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애초에 이 게임이 성립이 되지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 게임을 할 생각이 없었다면 가면 쓴 사내가 이렇게 번잡한 방법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기철이 생각하기에는 분명 가면 쓴 사내는 자신에게 무언가를 듣고 싶어 하는 것보다 확인 받고 싶어 했다.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다.



“당연히 구하고 싶지 않겠나.”



[그러면 두 번째 게임에 들어가기에 앞서 친구에게 또 다른 힌트를 주도록 하지. 어떤가? 배려 깊은 나의 행동이... 크크.]



“... 힌트가 무엇인가?”



[첫 번째 고백... 아직 흥미롭게 들었다네. 하지만, 그 고백을 누군가에게 한 적이 있던가?]



“... 당연히... 나 밖에...”



그러했다. 첫 번째 고백만 하더라도 기철에게 있어서는 그가 무덤까지 안고 가야 할 이야기였다. 누군가가 알았다면 현재의 기철은 이 자리에 있을 수조차 없었다. 비록 아내를 구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고백을 하긴 했지만, 이것만 놓고 보더라도 기철은 가면 쓴 사내에게 약점을 하나 더 잡힌 꼴이었다. 앞으로 몇 번의 더 고백이 있어야 할지 모르는 기철이지만, 이것이 설령 늪이라도 들어갈 수 밖 에 없었다. 자폭이 되더라도 아내만은 구해야 했기에...



[자네의 눈빛을 보아하니, 걱정이 참 많나 보군. 일단 걱정하지 말게. 어디 가서 친구의 고백을 발설할 내가 아니니까. 그렇다고 이것을 가지고 향후에 협박을 할 생각도 없다네. 난 단지 나에게 피해를 준 친구의 고백을 듣고 싶을 뿐이니까. 그렇다면 본론으로 들어가세. 첫 번째 고백에서 자네는 지연이라는 여자를 강간하고 성 노예로 삼았지. 17년 전에 말이야.]



“..........”



[참 재밌었겠어. 친구의 이야기만 듣는 것만으로도 내 아랫도리가 불끈 거렸다네. 크크.]



가면 쓴 사내의 말을 들으면서 기철의 머릿속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가면 쓴 사내의 행동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기철은 비록 그가 자신의 아내를 납치하면서 협박을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청난 악인이라고 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의 행동은 과거의 자신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가면 쓴 사내는 선이가, 악인가.



[나도 그런 기회가 있었으면 지연이라는 여자를 맛있게 먹었을 텐데 말이야. 아쉽군. 크크. 아참 이게 친구에게 중요한 건 아니지. 정리하세. 지연은 친구에게 당한 사실을 세상에 밝히지도 않고 자살을 했다네. 그리고 그 후 17년간 친구는 아무 탈 없이 살았단 말이야. 이봐, 친구. 친구는 지연의 애인이라는 김민우라는 사람을 본 적이 있나?]



“... 본적이 없지.”



[그런데 왜 날 김민우라고 생각을 했지? 김민우라는 사람은 친구와 어떤 연결점이 있었나?]



가면 쓴 사내의 말을 듣고 기철은 그제야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왜 자신은 가면 쓴 사내를 지연의 애인이라고 생각을 했단 말인가. 지연은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이 당한 피해를 전혀 알리지도 않았고, 그 때문에 자신도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리고 17년이 지났다. 세상에 묻혀 진 이야기였는데, 이걸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만약에 지연의 애인인 김민우라는 사람이 알아서 자신에게 복수를 한다고 해도 17년이라는 세월이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때, 나에게 고마움을 느끼겠는가. 세상에 묻혀 진 이야기가 아닌, 이 세상의 그 누구라도 한 명쯤은 친구의 잘못을 알고 있어야 하는 사건... 그게 핵심일세. 누군가는 친구의 잘못을 알고 있어야... 지금의 나처럼 복수를 할 것 아닌가.]



“.........”



[그러나 이런 나의 조언도 어떻게 보면 부질없는 짓이네. 친구만 솔직하면.... 모든 것이 해결 될 것인데... 과연... 두 번째 게임에서 자네는 솔직해 질 수 있을까.]



“..........”



가면 쓴 사내의 말은 더 이상 기철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이미 기철은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보고 있었다.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려고 애를 썼다. 분명, 자신은 많은 잘못을 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대다수가 사회에서 말하는 범죄였고, 범죄 중에서도 여자에게 몹쓸 짓을 한 강간이 전부였다.



기철은 자신이 했던 수많은 강간들을 떠올렸다. 대부분 경찰이 전혀 꼬리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강간을 해왔지만, 분명 생각해 보면 실수를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실수를 했을 강간, 그러나 좀처럼 기철의 머릿속에서는 그런 강간이 떠오르지 않았다. 만약에 강간을 하면서 실수를 했다면, 이미 자신은 교도소에 있어야 했지만, 단 한 번도 경찰이 자신을 찾은 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실수가 아니란 말인가. 실수가 아니다? 그런데 그 순간 기철의 뇌리에 하나의 사건이 떠올랐다.



“설마....”



[크크. 이제야 기억을 했는가?]



기철은 가면 쓴 사내를 자세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 녀석?’



그러나 기철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가면 쓴 사내의 얼굴도 전체적으로 볼 수 없기도 했지만,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었다. 무려 19년 전의 이야기였다.



“질문을 할 수 있나?”



[무언가? 때에 따라서는 대답을 해주지. 물론, 이름이나 출신 등은 곤란하다네. 크크]



“음... 가면에 가려 잘 알 수 없지만... 나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데... 나이가 어떻게 되는가?.”



[크크크크. 정확히 말해줄 수는 없지만... 친구와 비슷하다고는 해두지.]



가면 쓴 사내의 대답에 기철은 어느 정도 확신이 들었다. 분명 그 녀석이었다.



[준비가 되었나?]



끄덕.



[친구... 자네 와이프의 가슴이 달린 일일세... 크크. 이번에도 패배하면 자네의 아내 가슴은 내가 가질 것이니...]



“............”



가면 쓴 사내의 말을 들으며 기철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나 그 앞에서 내색은 하지 않았다.



[시작하지. 친구.]



가면 쓴 사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기철은 다시 한 번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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