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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마들 -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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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577회 작성일 20-01-17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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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바,차차차,자이브,삼바,탱고,폭스트롯,왈츠처럼 우리가 영화나 텔레비젼 중계를 통해 흔히 접하고,그만큼 익숙하면서도 선수들이 보여주는 화려한 동작들에 항상 감탄하는 댄스스포츠의 인기종목들을 제쳐두고,오빠는 느닷없이 맘보를 배우기로 결정했는데 그것은 오로지 장국영 때문이었다. 동대문 의류시장에서 일하던 오빠는 저녁시간에 근처 식당엘 갔다가 케이블 텔레비젼에서 방송하는 아비정전을 보게 되었다. 오빠가 보리차를 들이키며 일별한 영화의 장면은 우연히도, 장국영 혼자서 맘보를 추는 그 유명한 장면,그러니까 푸른색의 침침한 색감이 도는 좁은 방 안을 플로어 삼아 춤추는 장국영을,롱테이크를 사용해서 컷트없이 원씬으로 잡아낸 인상적인 댄스 장면이었던 것이다. 그리 길지 않은 39초짜리 씬이었지만,기타 듀오인 인디오스 타바자라스의 꿀처럼 농밀한 연주로 구성된, 마리아 엘레나의 선율이 마리화나 연기처럼 배경에 깔리는 가운데,리듬에 맞춰 흔드는 장국영의 마른 몸이 만들어낸 퇴폐적인 분위기에 오빠는 얼이 빠졌다. 오빠는 다음날로 당장 사교댄스 학원을 찾아가 3개월 간의 등록비를 일시불로 납입했다. 3만원을 깎아준다는 원장의 설득 때문이었다.



청소부가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그녀를 발견한 것은 새벽 5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사실 청소부가 본 것은 둘둘말린 담요뭉치였다. 어떤 놈이 동사무소 고지서 없이 담요를 버렸나 싶어 담요뭉치에 다가간 청소부는 담요 사이로 삐죽 삐죽 보이는 그녀의 맨살에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청소부는 그녀가 죽은 줄 알았지만 아직 약하게 맥박이 살아있었다. 응급실에서는 그녀가 알칼로이드 중독으로 인한 혼수상태라고 진단내렸다. 위급한 상황이긴 했지만 신속한 응급조치 덕에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숨쉬는게 중요하다고 그랬잖아.댄스의 기초는 숨이야,숨.맘보건 지루박이건 탱고건 다 똑같아.팔과 어깨는 일직선으로 하세요.그렇지,그렇게.앞뒤 가슴뼈는 움직이지 마시고.오직 양옆구리 가슴뼈만 움직여서 숨을 들이쉬세요.옳지.계속 그렇게." 숨이야 이제껏 수십만번을 쉬었겠지만 학원에 가서 오빠가 처음 배운 것은 댄서로서 숨쉬는 법이었다. 폼나고 당당하게 숨쉬는 법.오빠는 숨쉬는게 이렇게 거추장스러운 것인지 처음 알게 되었다.

"부랏싱하시고,퀵퀵 슬로우,퀵퀵 슬로우. 그립에 신경쓰시고.퀵퀵 슬로우..아냐,견갑골을 사용하라고 했잖아요.목을 세우란 얘기야. 그렇지 않으면 등이 휜다니까.그만,그만.전진워킹할 때 힙롤이 되지 않고 있어요.스텝에 모든 신경이 다 들어가 있으니까 그렇지.뭐라고 그랬어,8자를 옆으로 뉘인 걸 상상하라고 그랬지.골반으로 8자를 따라가." 며칠 후 대충 호흡단계를 넘기고 맘보스텝으로 들어간 다음에도 오빠는 여전히 자세가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파트너였다. 맘보 수강인원이 3명밖엔 없는데다 단 한명있는 여성도 나이 50을 지긋이 넘긴 아주머니였다. 그나마 없는 것 보다는 나아서 아주머니가 두명의 남자 사이를 오가며 파트너를 해주고 있지만 아마도 건강을 생각해서 운동삼아 댄스를 배우러 나온 모양인지라 어설프긴 오빠와 마찬가지여서 서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장국영의 맘보를 보며 받았던 처음의 감동은 가신지 오래였다. 이렇게 한 두시간 시달리다보면 오빠는 매우 허기가 졌다.게다가 무도학원이 세든 건물의 2층엔 제과학원이 들어가 있어서 수시로 빵굽는 냄새가 식욕을 자극하곤 했다.



그녀는 의식을 잃은 3일간 내내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선 세명의 사내들이 번갈아 등장했다. 그들은 얼굴이 없었고 누군지는 다만 느낌으로만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그녀 주위를 물레방아처럼 돌다가 톱같이 생긴 성기를 꺼내들고 보병이 진격하듯 그녀의 몸속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몸 어떤 부위도 톱이 닿는 순간 살이 열리며 톱을 받아들이는 음부로 변했다. 그들은 그녀 몸 전체를 사용했는데 그녀는 그것이 섹스인지 아니면 톱질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때 날은 저물고 있었고 병실엔 그녀의 가족이 지키고 있었다. 그녀의 코엔 산소호흡기가,팔엔 포도당 주사가 꽂혀 있었다. 걱정스런 얼굴을 한 아버지가 보였다.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니?" 물론 누군지 알아보았다. 사랑하는 아버지. 그러나 그녀는 아빠라는 말을 입에 꺼낼 수 없었다. 그녀에게 아빠는 이제 과거와 다른 의미로 암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알몸을 만지고 능욕하고 그의 성기를 핥게 하던 충격적인 아빠가 그녀의 의미를 선점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내가 누군지 몰라?" 얼굴을 더욱 가까이 대는 아버지를 보면서도 혀끝에 맴도는 아빠라는 단어를 뱉지 못한 그녀는,돌연 그 커다란 불안과 절망을 드러내며 삽시간에 무너졌다. 그녀의 오열은 통곡으로 바뀌고 무거운 침묵에 잠겨있던 병실 공간을 붕괴시키며 영원일것 같은 시간동안 쭉 계속되었다.



학원을 마치고 나온 오빠가 2층 계단을 내려오고 있을 때 마침 수업이 끝난 제과학원에서 수강생들이 몰려 나오고 있었다. 그때 오빠는 수강생들의 무리 중에서 그의 지독한 허기가 달아날만큼 눈에 확 띄는 여성을 발견했다. 군계일학이라고 할 정도로 너무나 독보적인 그 여성에게 정신이 팔린 나머지 오빠는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여성의 생김새,차림새,장신구,악세서리 모든 것이 캄캄한 새벽하늘에 떠오른 마이너스 2.5등급의 샛별처럼 반짝거리며 영롱하게 빛났다. 여성이 친구들과 얘기하며 오빠를 스쳐 지나갔다. 오빠는 여성의 어깨에 걸려 흔들거리는 품위있는 숄더백에 자연스레 눈길이 갔는데 역시 동대문에서 일하는 사람답게 그것이 얼마나 고가의 명품인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에트로 숄더백이었다. 오빠는 수강생들이 완전히 빠져나갈때까지 한참 그 자리에 머물렀다.왜 갑자기 마음이 흔들렸는지 모르겠다.너무 예뻐서였나..부지불식간에 지나갔던 그 여성의 얼굴은 이제 생각나지 않았지만 그 느낌,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넋을 잃게 되는 그 순간은 뇌리에 낙인처럼 찍혔다. 자기와는 레벨이 맞지않을 듯이 보이는 여자,꽃잎처럼 하늘거리고 깃털처럼 가벼우며 중세 조각처럼 아름다운 여자. 오빠는 그런 여자와 사귀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오빠는 그런 일은 절대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갑자기 자신이 무도학원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춤을 배워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싸늘한 자괴감이 오빠를 침몰시켰다. 다르게 살고 싶다. 마음 내키는 대로 살고 싶다. 그런 여자들과 정식으로 사귈 수 없다면 다른 방법으로라도.. 오빠는 그날 무도학원을,며칠 후엔 동대문에서 일하던 직장을 때려치웠다.

얼마 후 오빠는 인터넷에 카페를 하나 개설하고 명칭을 "마음에 드는 여성과 사귀기"라고 정했다. 우선 동료들을 모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어느 정도 회원들이 등록했고 그 중 쓰레기 같아 보이는 녀석들을 제외하고 괜찮아 보이는 몇명에게 대화를 신청했다. "방가방가^^님들아,,,우리 만나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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