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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 - 50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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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307회 작성일 20-01-17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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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부-



“인호야, 어제 잠도 못자고 꼬박 세웠는데 근처 어디 여관이라도 가서 눈 좀 붙여라. 멀리 움직일 일 있으면 내가 전화 할 테니까......”



“아유, 이사님...... 아닙니다. 여기서 시트 눕히고 자면 되니까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일 보십시오. 여기 있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합니다.”



“자식...... 그래, 고맙다. 그래도 아직 햇살이 따가운데 어디 그늘이라도 찾아서 들어가 있어.”



“네, 알았습니다.”



희숙이를 앞서 의왕으로 보내놓고 영진유통 본사에 도착했지만 본점 점장이 마음에 걸려 매장을 둘러본다. 냉큼 달려와 곁에서 수행하는 모습이 보기에 안쓰럽지만 내색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장난처럼 저질렀던 네다바이 사건이 이 친구의 오늘을 이끌어 낸 것만 같은 죄책감도 있어 마음 한 구석이 묵직하다.



“그래, 요즘 잘 하고 있네요. 수고 많아요.”



“네, 감사합니다.”



점장을 뒤로 하고 이 층으로 올라간다. 황부장의 자리를 흘끔 쳐다보니 아직 출근을 하지 않았는지 책상 위가 깨끗하다.



“황부장은 어디 갔나?”



“아! 오늘 급한 사정이 생기셔서 못 나온다고 전화 왔었습니다. 이사님은 아실 거라고 하시던데요.”



“으응...... 그래?...... 알았어.”



“이사님, 이제 나오십니까?”



“오! 어서 오세요. 그래...... 첫 출근한 소감이 어떻습니까?”



“뭐, 아직 어리둥절합니다. 그나마 김과장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래요. 두 분이 호흡 맞춰서 열심히 해 나가 보세요. 아직은 어수선하지만 오히려 이곳이 불모지이기 때문에 손대는 것마다 마이더스의 손처럼 작품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겁니다. 너무 환경만 탓하지 마시고 열심히 한 번 해 봅시다.”



“네, 이사님.”



“참, 사장님은 만나 보셨습니까?”



“아! 아직 안 나오신 모양입니다.”



“음...... 그럼 지금 사장님도 못 보고, 황부장도 못 만났으니 이거 참...... 나중에라도 김과장님이 인사 소개 좀 시키도록 하시죠?”



“네, 알았습니다.”



발코니로 나가 의자에 앉는다. 희숙이에게 의왕매장의 상황을 설명하고 전무와 개선된 관계도 말해주었다. 부소장은 당분간 본사창고에서 물건을 공수하는 일을 맡기어 문제를 풀어 나가기로 했으니 상황은 어렵게나마 해결 된 셈이다.

새 식구가 한 명 더 늘고 보니 이미 정리했던 마음이 다시 흔들린다. 새로 온 영업과장도 아직 자리도 잡히지 않은 회사에 오직 강주 한 사람 보고 건너온 셈인데, 방금 잘 해 보자고 당부해 두고서 발을 뺀다는 것도 사람 사는 도리가 아닌 것 같아 갈팡질팡 마음의 정리가 어려운 처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막판이라고 생각하고 미경이를 정공법으로 깬 것이 나름의 효과가 있어 황부장 부부가 순순히 아파트를 비우고 항복 선언을 해 온다면 별 무리 없이 그저 끌고 나가볼 만하기도 한 일이다.



“네......”



“자기야, 나야......”



“응, 잠꾸러기가 아침 일찍 어쩐 일이셔......”



민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뭔가 좋은 일이 있는지 목소리가 경쾌해 듣는 사람 기분도 덩달아 맑아지게 한다.



“피...... 혼자 자는데 늦잠 잘 일이 뭐가 있을까? 자기가 못 자게하고 괴롭히니까 늦잠 자는 거지. 호호호......”



“그래,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있나 보네?”



“으응...... 변호사 사무실에서 전화 왔는데, 구로동에 아파트 하고 일억에 합의 보자는데, 어떻게 할까?”



“허...... 자식,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냐? 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아이 참...... 그래도 얘기해 봐. 그거 얘기 해주는데 돈 드니?”



“그래, 그렇게 해. 그거 몇 푼 더 받아서 뭐 하겠어? 그렇게 해서 빨리 털어 버리고 얼른 일어서야지.”



“응, 알았어. 그럼 그렇게 한다...... 끊어......”



이젠 크든 작든 강주에게 허락 받고, 사소한 일도 강주에게 얘기하고 싶은 모양이다. 사랑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내가 누군가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누군가에게 포함되고 싶고 그에게 속하고 싶어지는 것, 그의 일부가 되어 함께 하고 싶은 것인 모양이다. 어쩌면 사위를 보는 아버지가 그렇고 며느리를 보는 어머니가 그럴지도 모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 이제 더 이상은 나에게 속해있을 수 없다는 상실감이 사위와 며느리를 시샘하게 하는지 모를 일이다.



“이사님...... 손님 오셨습니다.”



“으응?...... 그래? 이 시간에 무슨 손님?......”



자리로 돌아오니 미경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강주를 맞는다. 차가운 표정으로 무작정 밖으로 나오니 허둥지둥 따라 나선다. 말없이 따라오는 미경이를 데리고 근처 시장 통의 해장국집으로 들어선다.



“밥 아직 안 먹었지? 나도 안 먹었어. 아주머니...... 여기 선지 해장국 두 그릇만 부탁합시다.”



여전히 예쁜 얼굴이지만 나름의 고민이 있었던 것이 얼굴에 드러난다. 이제 주인의 밥그릇을 지키던 기반이 하룻밤 사이에 송두리째 무너져 버렸으니 자신의 효용가치는 고사하고 이젠 그 덤터기까지 무릅써야 무릇 충견이라 할 것이다. 이제 그 대답을 들어 볼 일이다.



“저...... 열쇠는 조금 있다가 그이가 가지고 올 거예요. 제가 아는 건 전부 다 말씀 드릴 테니까 제발 좀 용서해 주세요.”



“으응...... 밥이나 먹으면서 얘기 해......”



무심하게 듣는 둥 마는 둥 수저를 놀리며 대꾸를 한다. 회장의 평소 지론대로라면 이제 쓸모없는 인물로 전락한 미경이를 챙겨줄 리 없으니 비빌 둔덕은 오직 강주밖에 없는 입장이다. 별로 들어 볼만 한 이야기도 없겠지만 들어 보기로 한다.



“저...... 그 희숙이라는 아가씨는 회장님이 시켜서 한 일이에요.”



“왜 그랬대?......”



“이유는 저도 몰라요.”



“그 애를 겁탈해서 협박하면 의왕매장이 당장 손에 떨어지기라도 한다는 거야? 허허...... 그거 참.”



“저...... 잘은 모르지만 그것 때문에 그런 것 같지는 않았어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강간을 해서 어디 멀리 섬에라도 팔아 버리라고 했거든요. 다시는 나타나지 못하도록......”



순간 강주는 국그릇에 숟가락을 떨어뜨릴 정도로 놀라고 만다. 미처 상상도 하지 못한 어마어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저 강간을 해서 사람을 무참하게 만드는 정도라면 뭔가 협박을 해서 얻어 낼 것이 있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짐작이 가능하지만 인신매매를 해서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곳으로 보내려 했다는 것은 이유가 뭔지 그 속을 짐작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실 저는 그 일을 실패한 것도 오늘 아침에야 알았어요. 이사님 전화 받고서 그 애들한테 전화를 하니까 아무도 안 받더라고요.”



“그러면 회장이 점장 부인한테는 무슨 감정이 있어서 그랬지?”



“그건...... 제가 개인적으로 시킨 거였어요. 죄송해요. 회장님이 기왕 그런 일을 시키니까 저도 따라한 거예요. 이사님이 남편한테 불리한 증거를 갖고 있다고 해서 그 여자도 함께 보내 버리려고...... 그러면 증거도 소용없을 테니까 차차 기회 봐서 아파트를 찾을 수 있을까 해서......”



“허허...... 참...... 정말 둘 다 제 정신이 아니로구나?”



강주는 미경이가 거느리는 똘마니들을 해산시키고 아파트에서 내쫓은 뒤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이 순간 마음을 바꾸어 먹는다. 섣불리 미경이를 나락으로 몰고 가 상품가치를 떨어뜨려 버리면 회장은 얼마든지 다른 사람을 앞세워 비밀세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고, 그리 되면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 또 필요 없는 소모전을 벌여야 할 것이며 그 과정에 희숙이는 물론 다른 사람들도 얼마나 큰 피해를 입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젠 이 회사를 그만둔다고 해서 이 편집증 환자들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기도 어려운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모양이다. 호랑이의 등에 업혀 달리고 있는 형국이니 떨어지는 순간 물릴 것은 물론, 작은 정보라도 놓치지 않으려면 더욱 가까이 붙어 있어야 위험을 모면하게 생겨 먹었다. 그렇다고 황부장과 미경이, 이 두 사람을 그저 두고 볼 수만도 없는 일이니 한참을 고민하다가 부득이 제안을 통해 방법을 모색한다.



“너...... 여기서 회장한테 버림받으면 차라리 죽느니만 못할 거 아냐?”



“네...... 이사님, 제발 용서해 주세요. 이젠 정말 이사님, 알아서 모실게요.”



“그럼 너희 두 사람 이혼해라.”



“네?......”



“내 말 못 알아들어? 너하고 황부장하고 부부라지만 서로 오입은 각각 따로국밥일 거 아냐? 앞으로 넌 당분간 나하고 지내자. 그렇지만 남의 마누라를 데리고 살다가 내가 잘못 될 수도 있으니까 오늘부로 이혼하고 호적 정리해 가지고 오란 말이야. 그러면 네가 가지고 있는 기반 그대로...... 아니, 전보다 더 강력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그러면 누가 알아? 그 사이 열심히 회장 비위 맞춰서 다시 아파트도 장만하게 될지......”



“네, 알았어요. 그럴게요. 이사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정 황부장이 눈에 밟히면 낮에 너희끼리 뭉치든지...... 어쨌든 당분간은 내 말을 듣는 것이 너도, 황부장도 영창 안 가고 재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그렇게 하도록 해. 너도 상류사회 맛을 봐서 그냥 평범하게는 못 살 거 아냐? 낮에는 어디 가서 오입을 하더라도 저녁에는 무조건 아파트로 돌아와서 있으란 말이야. 모든 정보는 나와 공유하기로 하고...... 그 조건에 일단은 모든 것을 유보해 준다. 알아들었어?”



“네, 네...... 이사님, 감사합니다.”



“자...... 그럼 일단 희숙이는 내가 은밀한 곳에 숨겨서 네 작업이 성공한 것으로 보이게 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 해. 몸값은 애들 유지비로 줬다고 하고...... 그리고 황부장 똑바로 교육 시켜. 은근히 사장한테 붙어서 나를 물 먹이려고 하다간 너희 둘 다 너희들 방식대로 처리 해 줄 테니까......”



“네, 알았어요. 이젠 이사님에 대해서 알았으니까 절대 안 그럴 거예요.”



“그럼 네 짐은 다시 아파트로 갖다 두고...... 이제 나가 봐.”



“저...... 이사님, 그럼 오늘부터 오실 거예요?”



“나에 대해선 묻지 말고 시킨 일이나 해.”



“네, 네...... 지금 가요.”



이제 작은 언덕을 하나 넘었다. 우선 희숙이를 안전한 곳으로 보내야 할 일이니 할 수 없이 믿을 수 있는 인호를 깨울 수밖에 없어 미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한다.



“응...... 인호야. 나다.”



“네...... 이사님. 어디세요?”



“으응...... 밖에 나와 있는데......”



“아유, 깨우시지..... 요즘 같은 때에 왜 혼자 다니세요? 어디 계세요? 지금 가겠습니다.”



“아니...... 더 급한 일이 있어. 어제 나하고 같이 있던 희숙이 말이야. 일단 네가 의왕으로 가서 차에 태우고 집에 데려다 주고 와. 희숙이를 노리는 게 회장이라는 거야. 내가 앞으로 미경이를 비밀리에 부리기로 했는데 혹시라도 희숙이가 회장 눈에 띄면 산통이 다 깨진단 말이지. 미안한데 지금 바로 출발해라.”



“아! 네, 알았습니다.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이제 부쩍 힘에 부친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과거 처음 회사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고 정신없이 고참들의 틈바구니에서 이리저리 채이며 일을 배우던 시절을 돌이켜 보니 입가에 절로 미소가 어린다. 그저 시키는 것만, 아니, 시키는 것도 제대로 해 내지 못해 상사와 선배들에게 꾸지람을 듣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하루하루를 지내며 어깨에 내려앉는 삶의 무게를 화려한 계급장인 양 막걸리로 호기를 부리던 시절이었다. 조금씩 민첩해지고 조금씩 익숙해져 제법 고참 테가 나던 무렵 처음으로 받아들인 후배는 군 시절 밑으로 들어 온 졸병보다도 훨씬 더,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그저 매일 포장마차로 끌고 다니며 고참행세를 하느라 잘난 척 하던 부끄러운 추억도 흐뭇한 미소를 떠오르게 한다.

이제는 각박한 현실 속에서 더러는 도태되고 더러는 살아남아 어느 구석에선가 기계의 일부처럼 그렇게 붙박이로 살아가고들 있을 것이다.

그저 무지렁이 같은 삶이라고 손가락질 할지 몰라도 그래도 그때는 행복했었다. 고향 같은 그 추억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살벌한 생존경쟁 속에서 이미 강주도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모양이다.

식당을 벗어나 천천히 걸음을 회사로 옮긴다.



“이사님, 결재서류 올려 뒀습니다.”



청아한 여직원의 목소리가 강주의 상념을 깨운다. 미경이와의 전쟁을 치른 탓일까? 하룻밤 사이에 마음고생으로 늙어 버린 듯 시시때때로 생각에 잠긴다. 전무와 나누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기업인도 결국 정치인에게는 밥일 수밖에 없고 그네들도 결국 그늘에서 일을 해 줄 이들이 필요하다니 가야 할 길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저 땀 흘린 만큼 배 불리고, 더러는 소시민답게 가끔 복권도 구입하며 횡재를 꿈 꿔 보기도 하는 그런 삶은 의미가 없는 것인지 누구라도 붙잡고 묻고 싶어진다. 어느새 너무 멀리 달려왔다는 느낌에 뒤를 돌아보니 다시 가야 할 길이 아득하기만 하다. 인디언 어느 부족은 말을 달리며 뒤를 돌아본다고 한다. 혹시라도 바삐 달리느라 자기영혼이 미처 쫓아오지 못할까 두려워 그런다고 하니 오늘을 바삐 살아가는 이들에게 시사 하는바가 큰 이야기다.



“이사님, 결재해 달라니까요?”



“으응...... 그래......”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는 강주를 직원들이 의아한 듯 바라보니 괜히 머쓱해져 마치 잠이 부족해서 그런 것처럼 한껏 기지개를 켜며 다시 테라스로 나선다.

이제 앞을 바라보니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 할지 아득하기만 하다. 그래도 그동안은 나름의 재주를 믿고 순간순간을 버텨왔으나 점차 농후해지는 회장의 압박이 이젠 인명을 해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만약 희숙이를 미처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아...... 씨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위기를 넘기고 회장을 물을 먹이나?......”



닥치는 일마다 풀어오기는 했지만 운도 크게 따랐음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방어적인 태도만 취해서는 산지사방에서 닥치는 위험을 능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니 대책에 골몰하는 강주의 발밑에는 무수한 담배꽁초만 어지러이 그 수를 더해간다.

뭔가 공격적인 묘수를 찾아야 하는데 회장 같은 고수를 상대로 섣불리 수를 펼칠 수도 없는 일이다.



“아! 그렇지...... 내가 왜 그 양반을 진작 생각해 내지 못했을까?”



휴대전화를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한다.



“아! 나, 수원 최소장이야. 소장님 계신가?”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소장님...... 전화 받으세요.......”



흥겨운 매장의 음악소리와 함께 한창 안내방송을 하는지 마이크로 안내하는 소리가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온다.



“네, 전소장입니다.”



“아! 소장님, 저...... 최강주입니다.”



“응...... 그래, 네가 웬 일이냐? 바쁘신 몸이......”



“아유, 소장님도 참...... 제가 그동안 수원에 내려와 있다 보니까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이렇게 전화로만 인사를 대신 하게 됐습니다.”



“나...... 솔직하게 말해서 네 인사 받고 싶지 않다. 전화 이만 끊자. 난 딸린 식구가 많아서 아직은 이 회사 더 다녀야 돼.”



“아, 아...... 소장님, 잠깐만이요. 왜 그러세요? 무슨 오해라도 하시는 모양인데......”



“야! 이 새끼...... 최강주. 내가 널 그렇게 안 키웠는데 이 개새끼...... 어디 고참들을 씹어 먹어? 너...... 내가 네 밑으로 부소장으로 가도 그렇게 할 거야? 너, 그 애가 너한테 갈 때 내가 잘 부탁한다고 전화 했어? 안 했어?”



“아아...... 아, 오햅니다. 소장님, 그 양반 저하고 함께 있어요.”



“뭐야?...... 그럼 뭐야? 오늘 인사공문에는 퇴직한 걸로 나왔는데, 그리고 부소장이 둘씩이나 발령을 받고...... 노땅들은 죄 내쫓고 젊은 놈들끼리만 살겠다는 거 아니야?”



“아이고, 소장님...... 제가 누굽니까? 저 소장님 똘마니 최강주입니다. 그 양반 지금 다른 회사에 영업과장으로 영전해서 갔어요. 하여간 제가 소장님 저녁에 찾아뵙고 상의드릴 것도 있으니까 그때 자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너 이 새끼, 사기 치면 죽어.”



“하하하...... 역시 소장님은 욕이 나와야 제 맛이라니까요. 하하하......”



“그럼 오늘 내가 좀 일찍 나설 일이 있으니까 매장으로 오지 말고 집으로 찾아 와.”



“옛날 그 아파트에 그대로 사시나요?”



“아니야, 그 밑으로 이사했어. 거기서 쭉 내려오면...... 아니다. 집 찾기가 쉽지 않으니까 그 아파트 앞에 보면 볼케이노라는 맥주집이 있어. 찾기 쉬울 거야. 거기서 다섯 시에 만나자.”



“네, 나중에 뵙겠습니다.”



“나, 돈 없으니까 술값 챙겨와. 알았나?”



“넵, 하하하......”



전소장은 강주의 신입 시절 처음 배속 받은 매장에서부터 강주를 지도해 줬던 고참소장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소장생활을 해온 베테랑 소장이지만 놀라운 리더십에도 불구하고 임원이나 간부진의 평가는 늘 엇갈려 이제는 아예 만년소장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터에 고참소장이 부소장으로 강등당한 뒤 새파란 후배 소장 밑에서 퇴사를 당했다는 소식을 접하니 강주에게 서운한 표시부터 했던 모양이다.

업무에 있어 강주의 재치가 타고난 것만은 아니었다. 오랜 세월 함께 근무하며 존경하던 소장으로부터 배운 것이 대부분이니 그저 처음 보는 후배직원이야 대단한 임기응변이라고 혀를 내두르지만 사실은 그 대부분이 축적된 경험에서 우러나는 것일 게다. 모시고 있는 상사의 가치는 오히려 그 밑에 있는 후배들이 더욱 정확히 평가할 수 있는 까닭에 최근에는 역으로 인사고과를 평가당하는 수도 있어 앉으나 서나 나이 먹어가는 고참들은 괴롭기 일쑤니 위에서는 찍어 누르고 밑에서는 치고 올라와 갈 곳은 오늘도 포장마차뿐인 것이다.



“인호야. 그만 일어나......”



“아, 아...... 네..... 이사님.”



“너, 갔다 와서 지금 밥도 안 먹고 계속 자고 있었던 거야?”



“아, 아니에요. 오면서 한 그릇했습니다.”



“그래, 이제 담배 한 대 피우고 잠 좀 깨라...... 서울 좀 가야겠다. 다섯 시까지 가면 되니까 근처 어디 사우나라도 들어가서 좀 쉬다가 나오자.”



“네, 출발하겠습니다.”



사우나에서 쉬던 두 사람은 이제 피로도 말끔히 풀려 뽀얀 윤기를 드러내며 약속장소로 향한다.



“야, 그나저나 나는 네 덕에 술 마시고 편해서 좋긴 한데...... 영 너한테 미안해서 어떻게 하냐?”



“하하......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도 이사님을 모셔서 늘 기분 좋습니다.”



“자, 이 근처 어디라고 했는데...... 찾기 쉽다더니 안 보이네......”



“아! 저기 있네요. 볼케이노......”



“어디?......”



“저기 있잖아요. 저...... 수예점 유리창에 아프리케라고 크게 써 있잖아요? 그 옆에 조그만 맥주집......”



“아! 그래, 그럼 어디 차 대놓고 들어가자.”



아파트 축대를 마주보고 있는 허름한 맥주 집 문을 열고 들어선다. 칸막이가 군데군데 가려져 있는 탓에 까치발을 들게 한다.



“여기다. 이리 와라.”



“아! 소장님...... 반갑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으응? 이 친구는 누구야?”



강주는 전소장에게 그간 있었던 일들을 모두 들려준다. 친 형님이나 다름없는 선배이기도 하니 이상할 일도 아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전소장이 큰 소리로 웃어 제친다.



“하하하...... 그럼 이제 넌 아차 하면 죽은 목숨이네?......”



“어유...... 참, 소장님도...... 하하하......”



“야! 그럼 이젠 전무하고도 그런 사이면 고참들 좀 잘 봐주라고 해라. 씨바...... 늙어 가는 것도 서러운데...... 한 평생 충성한 회사에서 떨려 나는 심정이 어떤지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른다.”



“제가 무슨 힘이 있습니까? 이제 겨우 죽다가 살아났는데......”



“이 개새끼...... 그럼 너 안 도와준다?”



“아, 알았습니다. 우선 저부터 좀 삽시다. 참 나......”



“너, 장민호라고 알지?”



“네, 그 선배는 옛날에 나가서 무슨 사업을 한다고 들었는데......”



“그래, 나하고 같이 하자는 걸 내가 전망이 불투명해서 안 했거든......그 녀석도 거의 등 떠밀리다시피 그만두지 않았냐?”



“그럼?......”



“응, 결국 위기에 봉착했는데...... 지금 알거지 되기 일보직전이야.”



“......”



“너, 지금 그 정도 위치라면 십억 정도는 만들 수 있겠지?”



“시, 십억이요? 아유...... 소장님 십억이 뉘 집 애 이름입니까?”



“이 새끼야, 그 정도 뱃심도 없이 일을 치르려고 했어? 그 회사 네가 인수 해.”



“네?......”



“정확히 말하자면 인수하는 게 아니고 일단 부도부터 막아주는 거야. 그러면 장민호는 일단 살아나게 되고 알거지는 면하게 되니까 이 기회에 빼 내려고 그래. 조그만 슈퍼나 하나 차려주고......”



“그리고요?”



“너 그 회장 딸을 설득하든지 사위를 설득하든지 사업을 해보라고 유도하란 말이야. 그 애들 형편이 그렇다면서...... 뒷돈은 네가 이미 투자한 셈이니까...... 그 대신 그 애들 재산을 압류해 버리고......”



장황한 설명 뒤에 강주는 비로소 고개를 끄덕인다.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있어 나름의 확신이 서는 모양이다.



“음...... 잘 하면 가능하겠군요.”



“그래, 기왕에 네가 그런 조직도 거느리고 있다니까 그게 가능한 거야. 우리 같은 무지렁이야 꿈도 못 꿀 일이지......”



“네, 감사합니다. 소장님.”



“그래, 이만 일어서자. 또 답답한 일 있으면 전화 해.”



“그럴 게 아니라 조만간 소장님도 아주 자리를 옮기시죠?”



“야, 야...... 그 싸움 끝나거든 불러라. 나만 바라보는 뻐꾸기 새끼가 몇인지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해? 그런 일에 도전하기는 너무 늦었어. 내가 응원은 해 주마. 열심히 해 봐.”



“하하...... 그럼 가보겠습니다.”



“잠깐, 자네 운동했다고 했지?”



갑자기 전소장이 인호에게 말을 붙인다.



“네......”



“사람을 상대할 때 얼마나 떨어져 있어야 가장 유리한가?”



“네, 보통 한 걸음정도라고 할 수 있죠. 한 걸음에 공격과 방어가 모두 가능하니까요.”



“최강주, 들었지? 너무 긴장하고 떨어져 있으면 공격하기도 힘들어. 측근에서 빠짝 붙어서 예의주시하는 거야. 싫어도 좋은 척......”



“네, 명심하겠습니다.”



저녁에는 미경이가 기다리는 아파트로 갈 생각으로 차를 다시 인천으로 몰아간다.



“네, 회장님......”



“호호호...... 네, 이사님...... 저녁이나 함께 할까 싶어서 전화 드렸는데......”



“지금 어디신가요? 저는 이제 인천에 거의 도착해 가는데......”



회장과의 약속장소는 시내의 한 일식집이었다. 어차피 술도 거나한 터라 한 잔 더 할 요량으로 사양치 않고 만나기로 했다. 게다가 이제 밀착해서 빈틈을 찾아내기로 마음먹은 터니 사양해서 될 일도 아니다.



“이사님, 안녕하세요? 호호...... 우린 구면이죠?”



“네, 어서 오십시오. 허허...... 멀리서 오셨습니다.”



회장과 함께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회장 딸 현유미였다. 그녀의 말로는 회장이 이미 한 번 만나보라고 했다는데 직접 데리고 온 것을 보면 오늘 그 속사정을 알 게 되는 모양이다.

회장을 만났으니 이제 다시 죽고 죽이는 살벌한 격전장 한 가운데로 돌아오고 말았다. 전소장과의 추억담은 이제 잊어야 할 시간이다. 숨 가쁜 하루를 살면서 일터에서 돌아와 가족의 품에 안기면 오히려 연약한 아내와 자식들에게서 위로를 구하고 싶은 아빠들의 마음이 그럴 것이다. 뒤돌아 바라 볼 고향 같은 상념도 전장 같은 일터에선 허락되지 않으니 포장마차에 앉은 뒷모습이 부쩍 왜소해져 버린 아빠들을 부디 따뜻하게 안아줘야 할 일이다.



“호호호...... 이사님이 증권에도 관심이 있는 줄은 제가 미처 몰랐네요?”



회장이 빌려준 돈 오천만 원을 거론하는 모양이다.



“아! 네...... 제가 저쪽 회사를 정리할 때 일이 그나마 다행스럽게 잘 풀려서 퇴직금 여유가 생겼어요. 회장님께 돈을 빌리고 며칠 되지도 않아 돌려드리는 것도 그렇고 해서 마침 근처 객장을 지나다가 우리 회사 주식에다 투자하자 싶어서 그랬는데, 아...... 글쎄 거기서 유미씨를 만났지 뭡니까? 하하하......”



“네, 그러게요. 저도 유미한테 그 말을 듣고서 깜짝 놀랐어요. 그게 어디 보통 인연이에요? 호호호...... 아유, 그러게 진작 한 번 만나보라니까 이제서 이사님을 보더니 오늘 만나게 해 달라고......”



“아유, 엄마...... 뭐, 쓸 데 없이 그런 소리까지 하고 그래요. 제가 언제 그랬어요? 그냥 여기까지 왔으니까 얼굴이나 보고 가려고 그랬죠.”



“아! 네...... 허허...... 뭐, 저라도 다시 한 번 연락을 드리려고 생각했는데 그게 뭐 어떻습니까? 오늘 이렇게 뵙게 되니까 반갑네요.”



“이사님, 아유...... 그나저나 며칠 안 됐는데 무척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요?”



“허허...... 저야말로 그렇군요. 아...... 요즘 악재가 겹치는지 자꾸 어려운 일만 생기네요.”



회장이 모른 척 강주를 살피고 강주도 역시 딴전을 부리며 회장을 떠본다.



“어머! 그래요?...... 그럴 때는 다 잊어버리고 어디 여행이라도 갔다 오셔야 하는데...... 그동안 휴가도 제대로 못 쉬시고...... 죄송해서 어떻게 해요?”



“아직 젊은데 뭐...... 휴가야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괜찮습니다.”



마침 회장이 화장실을 가는지 자리를 비워 유미에게 말을 건넨다.



“음...... 유미씨, 뭐...... 부탁하실 거라도 있나요? 혹시 남편 일 때문에......”



“아, 아...... 아니에요. 그저 온 거에요. 엄마도 뵐 겸...... 마침 여기서 일하신다니까 온 김에 뵙고 가려고 그랬지요.”



“아! 네...... 난 또..... 혹시 부군 일로 뭔가 부탁하실 게 있는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하하......”



“아니에요. 그 사람은 그런대로 잘 적응하고 살아요. 그러니 제가 매일 객장에 나가서 살다시피 지내고 있죠. 호호호......”



“허허...... 좋은 날도 있겠지요.”



“네......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회장이 돌아오고 식사를 마칠 즈음 유미가 먼저 일어선다.



“저...... 이사님, 그럼 먼저 일어설게요. 엄마, 나 먼저 가요.”



“아니, 왜? 같이 나가시죠?”



“아니에요. 저는 근처에 약속이 있어서...... 두 분은 후식 드시고 나오세요.”



“응, 그래...... 나중에 통화하자. 엄마가 전화할게......”



유미가 나가고 다시 회장이 강주를 바라본다. 식탁에 턱을 괴고 바라보는 모습이 암내를 풍기는 사마귀 같아 예쁜 모습에도 이런 느낌이 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언니, 언제 왔어요? 어머! 이사님도 오셨네?......”



“으응, 들어올 때는 안 보이더니...... 어디 갔다 오니?”



“어, 어?......”



이 여자도 회장 패거리 중의 한 명인데 이 식당을 운영하는 모양이다. 냉큼 회장의 옆으로 가서는 귀에 대고 서로 귓속말을 하고 있어 안 그래도 편치 않은 강주를 더욱 불편하게 만든다. 이내 일어서며 강주에게 고개를 까딱이곤 커다란 엉덩이를 흔들며 사라진다.



“호호...... 이사님, 나중에 봐요.”



“뭡니까? 여기 이 식당...... 저 여자가 운영하는 모양이죠?”



“네, 그래요. 사실은 내가 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저 애는 매니저 역할만 하는 거니까...... 호호......”



“아니? 별 걸 다 하십니다. 참...... 차라리 따님하고 사위한테 이런 식당이나 하나 열어 주시지......”



“그 사람은 재목이 아니에요. 이런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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