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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세탁소 - 8부

작성일 20-01-17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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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익명 조회 71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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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화 : 두 여인의 야심









#01 패왕색녀의 마음









안명수는 정수와 한 약속을 지키려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세웠다.



그런데 문제는 안명수가 아직은 베테랑급 기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안명수는 취재를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방송이나 신문에 내보낼 권한은 없다.

더구나 방송공사 LBS 에서는 신문을 발행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만일 LBS 웹싸이트에 기사를 띄우고, 동시에 프로그램으로 방영을 해버리면

문제는 간단해질 것이다. 그러면 국내 일간지들은 너도나도 보도를 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것을 해내기 위해서 안명수는 역부족이다.

그런데 그녀의 대학 선배 박철호가 LBS 에서 PD 로 일한다.

그녀는 박철호 PD를 활용하기로 했다.



안명수는 우선 취재에 착수했다.

둑은 마을 수 없다.

무너진 둑을 타고 안명수의 열정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나온다.





먼저 포항에 내려가서 정수의 누나 한경애를 만났다.

정수에 대한 그녀의 야심을 털어놓고 취재에 응해달라고 부탁했다.



한경애가 생각할 때에는

안명수가 하는 일이 어쩌면 한정수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을 것 같다.



개천에서 용아 나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세상.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인맥이 없으면 소용없는 세상.



한정수가 악바리처럼 노력했다고 치자.

내년에 오디션에 또 나가서, 그 때는 반드시 입상한다는 보장이 없다.

또, 입상 했다면?

그 이후에는 정수를 위해서 이 세상이 핑크빛으로 바뀌기라도 한단 말인가?



안명수는 한정수에게 신이 내린 인물이 아닐까?



경애는 안명수와 과메기를 안주로 해서 소주도 마셨다.

정수가 다니던 학교, 또 정수가 다니던 음악학원 들을 돌아다녔다.





"이 음악학원은 연예인이나 연기자를 양성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없이 그냥 취미로 ..."

"보니까 그렇네요."

"그럼 맨 처으에 이 사건을 일으킨 그 <길거리 스카웃>을 한 기획사사 운영하는 학원요."

"아, 거기 가서 정수가 어땠는지는, 오디션이 있었기 때문에 기록이 있을 겁니다."





안명수와 한경애는 서울에 있는 그 연기학원에 갔다.

이 학원이 기획사와 연결이 된 것은 맞는데 ...

이 관계라는 것은 사돈의 팔촌의 16촌과 36촌 관계에 있는 관계였다.

전혀 없는 것은 아니므로 완전한 사기는 아니다.





안명수는 그 학원의 원장에게서 한정수 오디션 결과를 달라고 했다.



"7, 8년 전의 기록인데?"

"보관하시지 않나요?"

"있어도 상태가 어느정도일지 모르겠어요."





그들이 제시한 결과는 드 당시 심시위원들이 한정수를 평가한 기록이었다.

<모델> 과목에서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카메라를 잘 받으므로 점수가 좋았다.

<배우> 과목에서는 연기에 몰입도가 높지 않아서 점수는 좋지 않았다.

<가수> 과목으로는 음악성 부족 과 곡 해석 능력 부족으로 부적합으로 판정이 나와잇었다.





한경애와 안명수가 주고 받았다.





"세상 참 .. 내 동생 정수가 하지 말라는 것에 덤비고 있었네요."

"하라는 것 한다고해서 다 성공하나요?"





안명수는 서울로 돌아왔다.



안명수는 마치 다큐멘테리를 쓰는 작가처럼 프로그램을 위해서 일일이 전부 기록했다.

또 장면들을 설정하고 나레이션과 극화까지 동원했다.

그녀는 전체 시간을 20분 정도로 예상하고 방송 미친듯이 시나리오를 쓴 것이다.





마약아.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제발 떠 다오.

그럼 나도 따라서 뜬다.





안명수는 박철호PD 를 만났다.

장소는 강남에 있는 한양로얄호텔 18층 스카이라운지이다.



아 자리에 나온 안명수는 신념에 차 있었다.

원래가 그렇다.

신념에 찬 여인은 아름답다.

박PD가 볼 때 안명수도 아름답다.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래서 마음을 떼기란 더욱 어렵다.

어깨에서 멈춘, 웨이브한 풍성한 머리, 빛을 발산하는 듯한 신비로워보이는 깊은 눈,

붉은 색으로 가까워가는 분홍색의 입술, 풀만한 볼륨의 굴곡을 나타내는 트렌디한 패션.

모델이나 여배우를 하지 않고 여기자를 하는 이유가 뭘까?

이 광활한 세상 곳곳에 숨겨져 있고 또 위장되어 있는 일들을 까발리기란 쉽지 않을텐데 ...

그것도 여자의 몸으로.





안명수가 본 박PD.

30대 후반 어딘가에 서 있는 텁수룩한 머리의 세월 속의 남자다.

그가 자신을 차갑게 바라보면, 그것 만으로도 이미 주눅이 들고 또 간담도 서늘해진다.



누구나 제삼자가 봤을 때 이 두 사람의 앙상블은 도저히 불가사의한 것이라고 생각할거다.

그는 이 세상을 양분해서 본다.

프로그램으로 만들 가치가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조심하지 않으면 오늘 끝없는 추락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끝없는 그리고 중단없는 경계태세가 유지되어야 한다.





"선배님, 돌직구로 말씀 드릴게요."

"궁금하네."





박PD가 본 것은 안명수가 쓴 너무도 어설퍼서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방송 시나리오 원고였다.

그것도 손을 써서 칼라 펜으로 군데군데 동그라미, 별표 등등.

마치 고등학생들이 시험공부하는 공책같다.



박PD는 약간 눈을 찌푸렸다.





"이걸 ... 왜 썼어?"

"밤에 잠이 안와서요."

"차라리 낮에 열심히 일을 해. 실없이 이런 일로 바쁜 사람 불러내지 말고."





박PD가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안명수는 그의 팔을 잡았다.



그녀는 알고있다.

여자가 바로 이 싯점에서 주로 몸을 던진다.



만일 오늘 밤을 호텔에서 같이 보내면 내일은 틀림없이 그가 안명수를 부르게 돼 있다.

그러나 안명수의 자존심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신발아, 수박아, 너같은 노땅구리랑 내가 호텔에 왜 가냐?

나는 아직 풋풋한 내꺼 마약 따로 챙겨뒀거든.

내가 너같은 돼지같은 신발쉬퀴랑 호텔에 가느니,

차라리 엄마랑 황당무계한 맞선자리에 간다.



이 말은 입밖에 내보낼 수가 없으므로 안명수는 가슴 속에 묻어두어야 했다.

그래서 안명수의 가슴 속을 짜증과 분노가 가득히 채웠다.

또 안명수의 눈물샘을 빠져나온 눈물은 이미 눈망울과 눈썹으로 번졌다.



눈에서는 눈물이, 코에서는 다행스럽게도 콧물 대신에 더운 콧바람이 나왔다.

그리고 입으로는 열풍을 섞어가면서 박PD에게 말했다.

신경을 바짝 써서 단어 하나에까지 신경을 바짝 써야 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배우고 싶은데요."

"수업료 내. .. 그런데 안기자, 왜 울어?"

"수업료는 선배님 다니신 대학에 벌써 냈어요."

"그럼 알아야지."



"그래도, 대학에서 배워도 모르면, 후배를 끌어주는 입장에서 선배가 가르쳐 주시면?"

"나는 혼자야. 언제 일하고, 언제 후배 가르치고 또 언제 윗사람 눈치보고 ..."

"선배님."



"요새 젊은 사람들은 그냥 앉아서 먹으려고 해?"

"저 앉아만 있다가 온 것 아니거든요. 포항 여기, 여기 다 갔다왔어요. 보세요."





박PD는안명수가 제시하는 자료집을 열어서 스크랩 해 둔 것들을 일일이 훑어보았다.

그리고 한동안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들어갔다.





"선배..."

"쉿~!"





박PD는 자기만의 5차원, 6차원의 세계까지 넘나들면서 머리 속에서 그만의 생각을 한다.

그것이 바로 PD들의 특권이다.

이거 못하면 PD 못해먹는다.





"안기자."

"예, 선배님."

"기자 때려치우고, 차라리 방송작가 해요."

"왜요? 아직 많이 ..."



"오늘은 갑자기 만나서, 지금은 이런 얘기를 할 시간이 없다."

"그럼 어쩌죠?"



"이번 주에 프로그램 확정이 끝나면 다음 주에 시간 될거야."

"그럼 미스 윤한테 시간을 잡아 달라고 해요?"



"바보, 안기자랑 3박 4일 정도를 들여서 이 프로그램 구성을 샅샅이 다시 해야해."

"예에에에?"



"알아 들었으면 월요일에 출근하는 대로 내 방으로 와.

그리고 시나리오 원고랑 자료는 워드작업 해서 USB 에 담아와.

지금 나한테 연애편지 써온거야?"



바빠서 허둥지둥하는 모습으로 들어온 그는, 갈 때에도 바쁘다는 듯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휭~하니 가버렸다.

그가 먹으려던 스테이크, 그가 마시려던 와인 모두 손도 대지 않았다.

아깝다.



갑자기 아프리카에서 기아로 목숨을 잃어가는 어린이들이 생각 났다.

또 그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시던 <만년 소녀의 화장빨> 오드리 헵펀님도 떠올랐다.



그래도 그는 냉수 한 컵 만큼은 마시고 나갔다.

아마도 속은 차려야겠다는 결심이 대단했었나보다.



이 넓은 세상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모두 다 잘나가는 건 아니다.



박PD역시 잘나가는 <이상한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이상한 사람들>과는 <이상한 대화>를 해야 성공한다.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안명수는 그와 이상한 대화를 한 적이 없다.

그래서 실패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그 바쁜 와중에서도 나갈 때에는, 저녁식사로 나온 스테이크, 샐러드, 와인

그리고 아이스크림까지 모두 깔끔하게 계산하고 갔다.

안명수는 그냥 몸을 일으켜서 나가기만 하면 된다.



그와의 만남은 성공적이었다는 말인데 ...

꼬투리 잡힐 만한 말이 오간 것도 전혀 없는데 ...





그럼 이상한 것은 방송 시나리오였나?

이것이 성공의 키였나?





아!

선배님,

아까 그 호텔 생각 ... 죄송요.





내뱉지 않고 가슴 속에 깊숙하게 묻어 둔 말 .. 이제 꺼내서 버렸다.

이제야 속이 후련하고 가볍다.







* * * * * * * * * *





#02 철벽녀의 마음







정수는 세영으로부터 박하나 고객과의 소송에 대하여 들어서 사건의 흐름은 알고 있다.



그런데 박하나 고객은 그 소송에서 이기고 또 배상까지 받아서인지 전혀 불만스러운

티를 내지 않는다.



그녀는 전과 다름없이 세탁소에 와서 옷을 맡기고 또 배달을 부탁한다.



세영도 이제는 그가 혼자서 배달 나가는 일에 대하여 과잉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정수가 고객과 성추문에 휩싸이지 않도록 몸관리를 한다고 믿기 시작한 때문이다.





그 날도 정수는 박하나 고객에게 세탁이 끝나서 뽀송뽀송한 옷들을 배달해야 했다.

유성 아파트 5동 805호이다.

차로 10분이면 간다.



세영의 말에 의하면 생긴 것은 불여우 같고, 나이는 이미 30대 중반일 것이라고 했다.

정수가 보아도 박하나 고객은 이미 보통 몸매의 수준은 훨씬 넘는다.





박하나 고객의 정장과 바지, 셔츠들을 차에 실었다.

소송 이후 부터는 세영이 일일이 확인을 다 한다.





고객이 요청한 9시 반이라는 시간에 도착하기 위해서, 정수는 미리 9시 10분에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또 9시 15분에 출발했다.



약속된 시간보다 3분 정도 늦게 정수는 벨을 눌렀다.



한참 후에 문이 열리고 정수는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그에게 문을 열어준 박하나 고객의 얼굴에서는 피로가 물씬 풍긴다.





"저 옷방으로 부탁해요. 들어오세요"





이제부터는 박하나 고객이 확인할 차례이다.

영수증과 비교해서 이상 없음이 밝혀졌다.



박하나는 그를 주방의 테이블로 데려갔다.

정수는 박하나가 내미는 오렌지쥬스를 마셨다.





"아무리 배달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내 집에 오신 손님이신데 ..."

"감사합니다."

"저녁 식사는 하셨나요?"

"아직요. 이제 가게 문 닫고 나오는 길이라서요.



"괜찮으시면 저랑 같이 드실래요?"

"저야 고맙죠."



"그럼 식사 주문하고, 그 사이에 나는 샤워좀 할게요.

아마 비슷하게 올것 같아요.

우리 마약씨, 뭘 먹을까?"





박하나는 정수와 치킨에 와인 한잔으로 결정하고 전화를 했다.

테이블에 지갑을 두고 또 와인과 잔을 꺼내놓았다.

도착할 때 까지는 30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욕실로 사라졌다.



기다림 이후에야 식사가 시작될 것이므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30분 정도 시간을

의미없게 기다리는 것이다.

나중을 위하여 지금을 버려야 한다.





쏴아아아아

샤워기에서 물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지금 박하나는 알몸으로 저 물줄기 아래에 서있을 것이다.



<그녀의 알몸> 이라는 생각 때문에 정수의 심중에서 깊이 잠들어있는 음란마귀께서

잠에서 깨어날 것만 같다.



이 음란마귀께서 정수가 기다려야하는 의미없는 시간을 음란의 의미로 가득 채워주실 것 같다.

정수의 볼이 화끈거리는 것은 아마도 심장이 더 빠르고 또 더 강하게 뛰고있기 때문이리라.





이제는 그녀가 물 밑에서 몸을 씻는 장면이 마치 유두브 동영상을 보듯이 눈에 선하다.

경험에 입각해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정수는 그녀와 같이 저녁 먹기로 한 것을 후회했다.



그는 일부러 소파로 내려와서 앉았다.

이것은 그의 당돌한 결정이고 또 그것을 실행에 옮긴 행동이었다.

그 자리에 앉아있으면 욕실에서 나오는 그녀를 바로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TV 를 켜고 프로그램을 찾고는 있지만 손끝이 떨리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물 소리가 끝났다.



어떤 모습으로 그녀가 나올까?

(1) 목욕가운?

(2) 수건으로 가릴까?

(3) 그냥 손으로만 대충 가릴까?



물론 정수가 진심 원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X) 이다.

그도 피끓는 청춘이 아닌가?

그런데 박하나도 과연 그의 생각과 같을 지는 의문이다.

그럴 확률이야 엄청 희박할 것이다.

그래도 그는 혼자서 기대를 하고, 또 도박을 하고, 기뻐하거나 낙담할 것이다.



마치 롯또를 하듯이.

다 알면서.

그래도 한번 더 .. 혹시 알아?

알긴 .. 개뿔.

개가 뿔 있냐?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딸깍> 하고 났다.

그는 얼굴은 TV 화면을 향하고는 있지만 그의 눈길이 가는 곳은 욕실 문 쪽이었다.

손을 들어서 이마를 긁는 척도 해본다.



박하나는 목욕가운을 걸치고 나왔다.

정수가 마음 깊이 실망한다.

아마도 상처를 받은 듯.



그녀의 눈길과 마주쳤다.

박하나는 마치 그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독심술이라도 사용하는지, 웃음을 내뿜고 가운을

찰랑이며 방으로 들어갔다.



과연 무엇일까?

저 웃음의 의미는 ....



그의 마음을 몰라주는 그녀가 야속하다.

그의 마음을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면서 약올리는 그녀가 얄맙다.



이제 그는 TV화면을 꺼버렸다.

그에게 심사가 뒤틀린 모양이다.

많이는 말고, 약간만.



벨이 울리자 정수가 테이블에 있는 박하나의 지갑을 들고 문으로 갔다.

돈을 주고 치킨을 받았다.

바깥 세상과는 담을 쌓겠다는 듯 박하나의 방으로부터는 헤어드라이어 소리만 들려왔다.





드디어 박하나가 나왔다.

그런데 목욕가운이 아니라 반바지에 라운드티이다.

짧고 깊다.

더 말해서 무엇하랴.




{출처:야담넷}
박하나는 소파로 상을 차렸다.

두 사람은 얇은 비닐장갑모양의 얇은 비닐을 손에 끼고 젖가락을 잡았다.

그리고 그의 옆에 앉아서 조각난 닭고기를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뼈가 없어서 좋았다.





"사장님, 지난 번 소송 때문에 기분 나쁘시다고 안해?"

"별로요."

"못쓰게 돼서 버려야 할 바지를 왜 달랜대?"

"글쎄요."



"나 몇살 같아?"

"나랑 동갑 같아요."

"뻥쟁이네."

"진심."

"그럼 바보거나."



"왜요?"

"네다섯살 아래위로 보는 것은 몰라도 열살 넘게 붙이고 떼면 어떻해?"

"여자 나이는 원래 그런 거 아닌가요?"

"고무줄?"

"그럴 수도."

"여자 나이는 물어서도 안되고 알아서도 안돼"

"알았어요."





그녀는 그와 함께 와인으로 목을 축인다.

분위기가 제법 화기애애해 졌다.

음란마귀보다는 닭이 우선이다.





"밤 10 시에 치킨, 피자 이런 배달 음식 .. 안좋은데."

"다른 선택이 불가능하니까요."

"있긴 있어."

"뭔데요?"

"후훗! .. 안먹고 그냥 자는 것."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 헤헤!"

"혼자 살면 저녁 먹는 것이 문제야."







그가 박하나의 기름에 번들거리는 입술을 본다.

아름답고 또 키스하고싶은 그런 입술이 전혀 아니다.

볼상사납다.





"마약아."

"예?"

"너 여기로 매일 배달 오게 할까?"

"그건 .."

"마약이랑 같이 먹으니까 엄청 좋아."

"아루리 그렇다고 .. 매일 배달음식만 드시게요?"

"가끔 나가서 먹기도 .."

"그럼 나가서 먹는 날만 배달하면 안되나요?"

"나쁘다."







어느새 닭고기가 가득 들어있었던 종이팩이 비었다.

인간승리이다.



박하나의 재빠른 몸놀림 덕분에 소파 앞에 놓인 탁자는 깨끗해졌다.

두사람은 양치도 했다.



촛대에 양초가 꼽히고, 촛불이 밝혀졌다.

거실의 조명은 아주 희미해졌다.



은은한 불빛을 내는 촛불앞에서 마시는 선명하게 빨간 색의 포도주.

정수는 감탄하는 수 밖에 없다.





"너는 어쩌다가 음악을 하게 됐어?"

"그냥 .. 특별한 이유는 없는데요?"



"중2병 하고는 상관 없나?"

"저요. .. 중 2 때는 모범학생."



"그럼 지금은? 지금은 타락했니?"

"세탁소에서 어떻게 타락해요?"



"저녁에 이렇게 여자 고객들한테 배달가고 ..."

"그럼, 저 가게 얼마 안가서 문 닫겠죠?



"흠 ..."

"왜요?"



"아냐. .. 마약아."

"예."

"내가 누나하면 안될까?"

"공짜로는 안되는데 ..."



"뭐가 필요해 .. 돈?"

"이러언. 좋아요. 돈이라고 해요. 얼마 내실래요?"

"글쎄? 2억?"

"에이~"



"나, 돈은 많아."

"혹시 롯또 당첨?"

"그런 거 안해도 돼."

"어디서 났는데요? .. 유산? .. 이혼 위자료?"

"씨잉~ .. 별 드러븐 거는 다나온다."

"미안해요. 이에는 이, 눈네는 눈, 농담에는 농담."



"나 농담 전혀 안했는데? .. 누나 뭐하는 여자 같아?"

"대학교 교수님? 아니면 회사의 높은 임원?"

"비슷하게 가깝게 갔네."

"그럼 학교 선생님? 아니면 회사의 과장?"



"아니고. .. 높은 임원의 비서."

"여비서."

"응, 우리는 증권회사. 나는 상무이사를 모셔."

"일 힘들겠다."



"돈은 말이지. ..."

"예."

"비밀 지켜줄래?"

"약속할께요."

"정말?"

"진심."

"무덤까지?"

"무덤까지."

"손가락"

"손가락"



"하아~ .. 내가 마약한테 이런 말까지 하다니."

"부담되시면 안해도 돼요."

"나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힘들어."

"엄청난 비밀인가요?"



"돈은 말이지. 물론 세탁소를 해서 벌 수도 있어."

"그렇죠."

"문제는 .. 그걸로는 많은 돈을 벌기가 어렵다고, 알겠니?"

"무슨 말씀?"



"이 세상에는 <검은 돈>과 <흰 돈>이 있어."

"왜죠?"



"<흰 돈>은 누구나 볼 수 있고, 또 일해서 벌 수도 있는데 ..

그 돈은 닥닥 긁어모아서 다 합해도 그렇게 많은 돈이 아니야."



"예."



"대부분은 <검은 돈>이야. 이 돈은 엄청 많은데도 보통 사람들 눈에는 안보여.

이 <검은 돈>을 보는 사람은 극소수야.

이 사람들은 <검은 돈> 을 주무르는 <검은 손> 을 가진 사람이야.

이 사람들이 이 <검은 돈>을 아무도 모르게 전혀 다른 곳에 쌓아두고 있어.

그들이 바로 아 <검은 돈>으로 하는 거래라는 것은 상상을 초월해.

혹시 <비자금> 이라는 말 들어봤니?"



"예."

"바로 이 <비자금> 이라는 돈뭉치도 검은 돈의 일종이야."

"그건 그렇겠네요."



"뉴스에 가끔 뜨지? 누가 해쳐먹은 돈이 몇백억 어쩌고 하잖니?"

"맞아요."



"월급쟁이 한평생 저축해도 몇억 벌기 어려워.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렇겠어?

국가에서 하는 정책자금을 빼돌려오기,

회사 돈을 빼돌리든가,

투기나 도박을 하든가 .. 알겠니?

이런 돈들이 몇백억씩 짜리 돈뭉치야.

이런 돈들이 우리 모르게, 우리 눈에 안보이게 여기 저기를 마구 돌아다녀.

그 돈을 잡는 사람들이 바로 <검은 돈>을 주무르는 <검은 손>을 가진 사람들이야."



"비참하네."



"그런 돈은 우리가 한평생 뼈빠지게 일해도 구경도 못할 돈이야.

개울물들이 모여서 강을 이루면 강물이 된다잖니?

돈은 그렇게 돈끼리 서로 붙어서, 돈끼리 몰려다녀.

거기서 이탈해 나온 얼마 안되는 돈이 <흰 돈> 이야.

이 <흰 돈> 을 벌겠다고 많은 사람들이 매일같이 아웅다웅해."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면 부자가 된다는 .."

"마약아, 그건 학교 교과서에나 있지. 요새 누가 저축하니?"

"일해서 번 돈 저축 안해요?"

"평생 저축해보세요. 드래서 얼마나 버나.

부동산 투기로 4, 5년만 해봐. 순식간에 그런 돈 벌어요.

우리나라 공직자들 재산신고 하는 것 알지?"



"예"



"그 사람들은 일년에 몇억씩 벌고 쓰고 해요.

어떻게 그게 가능해?

월급으로 말이 되는 거야?"



"누나에게는 그 <검은 돈>이 보이세요?"

"나는 그 <검은 돈> 을 모으고, 나르고, 쌓아두고, 거래해. 심부름만 하는 거야."



"그래서 돈이 많다고 하셨어요?"

"아파트만 해도 그래. 평생 일해서 저축해봐. 그래서 아파트 사겠니?"

"그건 ..."



"명심해. 네가 큰 돈을 빨리벌면 어쩔 수 없이 검은 돈에 접근하게 돼 있어."

"저는 흰 돈으로 만족 ..."



"젊어서는 야망을 약간 가져봐도 돼."

"그래도 그쪽은 ..."



"오늘부터 내가 마약 누나니까,

당장 내일 아침에 마약 계좌로 1000만원 넣어줄께."

"예?"

"<공짜 동생>한테 선물을 해야 하는데, 나는 내일부터 열흘간 미국에 출장 가요."



"그런다고 선물로 1000만원을?"

"마약이 내 동생이면, 내가 그 정도 선물도 못 해? .. 당장 마약 계좌번호 날려."

"알았어요."





박하나는 여간해서는 잘 웃지 않는다.

냉철함과 고집스러움이 얼굴에 가득한 것은 물론이다.

그것을 정수는 그녀의 눈빛에서마저 느낄 수 있었다.



간담이 서늘해진다.

어느 새 음란마귀는 흔적도 없다.



정수도 따라서 긴장하면서 그녀에게 계좌번호를 주었다.

내일 과연 정말로 그녀에게서 1000만원이 올까?





정수는 1000만원이라는 믿을 수 없는 말을 듣는 순간에 경애 누나가 떠올랐다.

대학에 내는 등록금, 그리고 악기 때문에 들어가는 목돈을 그녀는 묵묵히 감당해온

착하기만 한 누나이다.

만일 이 말이 정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믿어지지 않는다.

만일에 믿을 수 있다면 내일이 기다려지기라도 할텐데.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허황된 말이 있다.

이 밤이 가고 나면 자기 계좌에 1000만원이 입금돨 것이라는 이 말은 그 말보다도

훨씬 더 허황된 말이다.



믿어지지 않는 것은 현재이다.

확실성이 낮은 사건은 내일이라는 미래가 현재로 변해주어야 알 수 있다.

지금 당장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타임머신이 있어서 미래와 현실을 오갈 수도 없고.



정수의 경험상 믿음에 현실성이 희박해질수록 진실성은 높아진다.

곧 될 것처럼 떠벌기는 말들은 거의가 다 허황된 뻥이었다.

그 것이 고의였던, 고의가 아니었던,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박하나의 말이 거짓말이 되지 않으려면 미래가 현실이 되어야 한다.

입금하려고 했는데 비행기 출발 시간이 급해서 시간이 없어서 못하면?



미래에 대해서 모를수록 사람은 현재에 더 불안하다.

불안은 미래에 대해서 자신이 없고 믿음이 없을 때 온다.



1000만원 - 누나 - 참과 거짓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이 뒤숭숭해진 그의 머리를 정리라도 할 것처럼 박하나가 그에게 말했다.





"동생아, 우리 키스할까?"

"왜?"

"지금부터 누나 동생 인데 .."

"알았어요. 해요. 그런데 .."

"그런데 뭐?"



"키스, 어떻게 하실래요?"

"무슨 말이야?"

"오래? 짧게? 입술에만? 아니면 뭐 .. 등등"



"그런 건 미리 정하는게 아니지. 마치 강물이 흐르듯이 그냥 둬야지."

"그래요?"

"저알 몰라? 바보니? 키스도 안해봤어?"

"제가 어디가서 누구랑 키스해요?"

"이러언"





박하나는 정수와 얼굴을 마주했다.

정수는 그녀가 두 눈을 살며시 감는 것을 보았다..



지금까지 정수는 누나라고 부르라는 이 여자가 철벽녀인 줄로만 알았었다.



샤워하고 나서 화장기는 토옹 없는 생얼이다.

누구 얼굴에도 그러하듯이, 이 얼굴에도 눈, 눈, 코, 입이 자리를 잡고 있다.

립스틱을 바르지 않았을텐데도 분홍색이다.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잡는데도 손이 전혀 떨리지 않는다.



지금 그녀의입술이 가까이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

키스의 신호등은 이미 초록색이다.



그러나 정수는 망설였다.

이 키스의 끝은 무엇일까?



자신이 조금도 음란해지지 않는다.

음란마귀가 없어진 것이다.



이제 생각 따위는 고만 하고싶다.

누나인 박하나의 입술을 느끼고 싶다.





아까 키스해본 적이 없다는 말.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누나 박하나도 알 것이다.

뻔히 들킬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뭐지?

임기응변, 위기의 모면. 매를 벌기 ...등등

이번에는 얻은 것이 하나도 없다.



입술이 사람마다 다르듯, 키스도 사람마다 다르지.

적어도 경수의 경험에서는 그렇다.





그래도 정수가 박하나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댔다.



입술에 입술이 닿고, 입술은 입술을 빨아들였다.

누가 누구의 입술을 빨았다고 표현하기가 어렵다.

소설이나 야설에서는 그렇게 쓰지만 다 개구라다.

독자들이 그걸 원하니까 비양심적으로 그렇게 쓴다고 들었다.

서로를 미친 듯이 빨 때에는 같이 빤다.



어쨋든 ....



처음에는 닿기만 하던 두 사람의 뜨거워진 입술은 서로를 빨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살살,

그러나 갈수록 게걸스러워지고 거칠어졌다.

참으로 요망하고 야하게 섹스러운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혀 끝에 그녀의 혀가 느껴졌다.

키스는 깊이 파고들어가고 소리는 더 깊은 곳에서 깊은 소리가 나왔다.

박하나는 정수의 뺨을 쓰다듬고, 정수는 그녀의 목을 감았다.





정수에게 박하나는 이미 더 이상 철벽녀가 아니었다.

박하나의 입술, 혀, 얼굴, 목은 이미 뜨거웠다,

두 사람이 나누는 첫키스이다.

첫키스는 뜨겁다.



정수의 한 손은 박하나의 등을 쓰다듬었다.

다른 손은 그녀의 뺨, 목 그리고 어깨를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정수는 망설였다.

그는 키스하면서까지 갈등하고 또 고민했다.

그만큼 이 키스는 갈급한 마음의 진실한 표현일까?

정수에게는 아니다.

그러나 마치 혼신을 다하듯 그의 입술과 혀를 빨고있는 박하나에게는 일종의 카타르시스였다.



이 키스가 그동안 이 집에서 박하나가 혼자서 보내온 세월에 싸인 고독한 밤의 비애를

말끔하게 정리해 줄 것만 같다.



정수의 망설임과 고민과 갈등은 또 전혀 다른 곳에서 시작된다.





가슴으로 내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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