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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친야설

수레바퀴 - 1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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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1,242회 작성일 20-01-17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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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글이 이달의 작품으로 선정되었네요? 세상에... 어쩜 좋아.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독자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일 등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히히히.













휴대폰이라는 게 그렇게 편리한 거라는 건 가지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었다. 언제 어디서나 전화를 할 수 있다니... 지금이야 온갖 기묘한 모양에다, 있어도 사용할 줄 모르는 최첨단 기능을 갖춘 휴대폰이 나오지만 그 시절에는 내 또래에 휴대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부터가 화젯거리였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통화를 하는 그 우아함...! 처음에는 통화료를 대신 내주는 유진의 새엄마 눈치 때문에 극도로 자제했지만 며칠 못가 금새 도덕적 해이에 빠지고 말았다. 역시 무료는 그래... 그 날도 일부러 공중전화를 무시하고 유진의 학교 근처에 다 가서 휴대폰을 눌렀다.



유진은 먼저 내려와 기다리고 있었다. 가자는 말에 두 말 없이 따라나서는 그 애의 반응이 참 신기했다. 알밤 한 대의 위력인가? 버스에서 내려 아파트 입구에 접어드는데, 상가 뒤 쪽에서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와 길을 막는 어린 녀석들이 있었다.



“형씨, 나랑 얘기 좀 하지?”



뒤돌아서서 유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고소하다는 듯한 그 표정... 이 놈의 남매는 왜 이렇게 하는 짓들이 둘 다 깜찍할까? 세 놈이 다 유진이 또래 정도였다. 기도 막히고 해서 쓴웃음을 지어 주었다.



“나는 별로 용건이 없는데?”

“존 말할 때 따라와. 등에 칼침 맞기 싫으면...”



공원에는 몇몇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남자 화장실로 우르르 몰려 들어가는 우리들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보여주지 않았다. 한 놈은 들어오지 않는 폼이 쓸데없이 기웃거리는 사람들을 쫓아버리는 역할을 맡은 듯 했다. 세 명이 다 달라붙어도 시원찮을 판에 전력을 분산시키다니...



화장실은 절반쯤 맛이 간 형광등 하나만 켜져 있어 흐릿했다. 그제서야 유진이 쌀쌀맞은 표정을 지으며, 본색을 드러냈다.



“그러게 아저씨, 아저씨가 오빠 친구든 뭐든 난 관심 없거든? 진작 정신 차렸으면 이런 일 없었을 거 아냐?”

“크크크, 형씨. 작작 좀 하지 그랬수?”



“너는 뭔데?”

“나? 나... 유진이 남편.”



“푸하하하! 야 임마, 나도 남편인데...”

“킬킬킬!”



별 웃기지도 않는 말 가지고, 배꼽을 잡고 웃는 녀석들이 어이가 없었다. 분명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듯 했다. 그나저나 이놈의 계집애가 몸을 함부로 굴리고 다닌 건가?



“유진이 너, 얘들이랑 잤어?”

“남이야!”



“형씨 걱정이나 하셔! 지금이라도 그만 둔다고 하면 곱게 보내 줄게.”

“잡소리 집어 치우고 시작하자! 한 대는 먼저 맞아 줄게.”



“이런 씨발...!”



뺨에 닫는 뼈마디의 감촉... 글러브를 끼지 않은 맨손에 맞아본 것이 무척 오랜만이라 그런지, 아픔보다는 짜릿한 향수가 느껴졌다. 내 또래 같으면 마음껏 활개 치며 몸을 풀었겠지만, 어린 녀석들을 계도하는 입장이라, 내 주먹은 조심스럽게 그지없었다. 어디 부서져서 학부모라도 찾아오면 곤란할 테니...



그래서 그런지 주먹에 맞아 떨어지고도 금방 오뚜기처럼 일어나 다시 덤벼들었다. 그때쯤이면 이미 자신들의 상대가 아니라는 걸 눈치 챘을 텐데, 머리가 멍청한 건지... 아니면 여자 앞이라고 호기를 부리는 건지... 그런 녀석들에게는 한 대도 맞지 않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순간 마치 불이 꺼져 버린 듯,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차..!



턱에 주먹이 와서 닿는 감촉과 함께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그리고 연이어 옆구리에 불에 데이는 듯한 통증이 엄습했다. 때 맞춰 들리는 유진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



“아악!”



다시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시력이 돌아왔다. 마치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마술사가 녀석들을 위해 잠깐 동안 마법을 부려 내 눈을 가린 것처럼...! 밖에서 망을 보던 녀석까지 들어와 합세해 있었다. 그 녀석의 손에 들린 칼을 보자 옆구리 통증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야아~! 그냥 때려주기만 하랬잖아!”



유진의 항변을 들으며 나는 내 옆구리를 내려다 보았다. 셔츠의 길게 찢어진 부분을 중심으로 붉은 색이 물들고 있었다. 분노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이 새끼들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후다닥 세 놈 모두 도망쳐 나가고, 유진이만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후련하니?”

“아... 안 아파요?”



셔츠를 쳐들고 상처를 살폈다. 옆으로 길게 난 상처는 깊지는 않았지만, 쓰라린 통증은 계속되고 있었다. 세상에.. 칼을 맞다니... 화장실을 나서자 유진이 뒤따랐다. 손바닥으로 상처를 눌렀지만, 옆구리가 결려 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어떡해요?”

“덕분에 좋은 경험 했다.”



눈물까지 글썽거리는 걸 보면, 마음은 그리 독하지 않은 애인 건 틀림없었다. 유진을 집에 보내 놓고 택시를 잡아 가까운 응급실에 들렀다. 그런데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고 기어이 우기는 간호사...! 아프기도 하려니와, 다른 환자나 보호자들이 보는 앞에서 말다툼을 하기도 어려워, 할 수 없이 휴대폰을 눌렀다.



[나야, 누나.]

[수호? 어쩐 일?]



[이유 묻지 말고... 그냥 나와 줘.]



내 상처를 본 유미 누나의 하얀 얼굴은 진짜 유령처럼 창백하게 질리고 말았다. 그 표정을 보자 괜히 불렀다는 후회가 들었다.



“왜... 왜 그렇게 됐어?”

“그냥... 뱃살이 늘어나 벌어진 것 뿐이야.”



“말하는 거 보니까 죽지는 않겠네.”

“큭큭큭...! 집에 전화 좀 해. 나랑 같이 있다 늦게 들어간다고...”



의사가 와서 상처를 꿰매고 있는 동안, 누나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반찬고를 덕지덕지 붙이더니 ‘걸을 수 있을 것 같으면, 말하세요.’하고 쌀쌀맞게 툭 내뱉고 가는 간호사. 나중에 의사되면 저런 간호사하고는 절대 일 안해야지...! 마치 진짜 중환자인 것처럼 누군가 내 침대를 조용한 방으로 옮겨 주자, 침대에 바짝 붙어 앉은 누나가 그제서야 참았던 울음을 나지막하게 터뜨렸다.



“왜 그래? 내가 꼭 죽을 병 걸린 것 같잖아.”

“왜 그렇게.. 함부로 다녀...? 흐흐흑!”



손을 뻗어 눈물 자국이 길게 난 누나의 뺨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훔쳤다. 그러자 누나가 그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감싸더니 손바닥에 뺨을 올려 놓았다. 부드럽고 축축한 누나의 살결... 누나도 내 손바닥의 감촉을 음미하듯 살며시 뺨을 비벼왔다.



갑자기 왜 그런 걱정이 들었을까? 내가 사라지면 유미 누나를 지켜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거칠게 세상 살기에는 선미 누나보다는 유미 누나가 더 맞는 성격일 것이다. 콧대 센 선미누나는 여기저기 두들겨 맞으면 제 풀에 못 이겨 꺾일 테지만, 유미 누나는 그저 이리저리 밀리면서도 누군가 조그마한 은혜라도 베풀면 그것만으로도 감격해서 살아갈 테니까.



하지만 내 손 위에 둥근 계란 같은 얼굴을 올려 놓고 있는 유미 누나의 모습이 그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여리고,

약한 여자처럼 느껴졌다. 손을 누나의 뒤통수 쪽으로 미끄러뜨린 다음 가만히 잡아당겨 보았다. 너무나 힘없이 다가오는 누나의 머리...



눈물 때문에 두세 가닥씩 달라붙어 있던 그녀의 속눈썹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더 강해지는 누나의 냄새 때문에 정신이 아찔했다. 그리고 너무나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 오랜만에 느끼는 그 연한 점막을 나는 오래도록 탐했다. 누나는 뜨거운 숨결을 내 뺨에 쏟아내며 내가 자신을 충분히 느낄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다가, 이빨을 두드리는 내 혀를 받아들여 주었다.



키스를 마친 누나의 두 볼은 홍시처럼 붉어져 있었다. 저렇게 얼굴에 다 드러나니 거짓말은 절대 못할 거다...쯧쯧!



“누나...”

“응?”



“사랑해.”

“나도... 귀여운 내 동생.”



‘남자로서 사랑해’라는 말이 입술 뒤에서 맴돌았다. 굳이 그렇게 내게 자신이 친 누나라는 걸 강조할 거였다면, 도대체 키스는 왜 받아준 걸까? 세상 어느 나라에도 남매 사이에 그런 키스를 하는 법은 없었다. 그렇다고... 그 이유를 누나에게 물어볼 수는 없었다.



“누나, 나 부러질 것 같아.”

“더 아파?”



누나의 얼굴에 금새 근심이 가득 찼다.



“아니, 고추가. 조금 전의 부적절한 접촉 때문에 화가 났나 봐.”

“어휴~~~! 못 말려, 진짜. 일어나, 꾀병쟁이!”



묵직한 통증 말고는 그다지 불편한 데가 없었지만, 집까지 걸어가는 동안 날 부축해 주겠다고 끙끙거리는 누나에게 일부러 몸을 기댔다. 팔이 누나의 목 뒤로 돌려 걸쳐진 덕분에, 흔들거리는 손을 핑계 삼아 누나의 가슴을 톡톡 두드려 봐도 누나는 그 정도는 아무 상관 없다는 듯 내버려 두었다. 그래서 장난삼아 한마디 툭 던졌다.



“누나!”

“왜?”



“누나 가지고 싶어.”

“한 번 줄까?”



설령 유미 누나가 정말로 ‘한 번 준다’고 해도 내가 그녀를 덥석 가질 수 있을 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내가 함부로 할 수 있는 여자를 일렬로 세운다면 유미 누나가 아마도 가장 마지막에 서 있을 것이었다. 갖은 응석을 다 부리더라도, 누나의 미래를 망가뜨릴 수 있는 행동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누나의 과감한 농담만큼은 의외였다. 유미 누나가 변한 게 언제부터인지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도 소극적인 자신을 바꾸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어리숙하지만 언젠가는 누구에게든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그런 여자가 되기 위해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날의 사건 이후에 유진이 다니는 학교에 찾아가지 않게 된 것은 칼침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커졌다고 생각했는지, 그 계집애가 휴대폰으로 주말에 안부 전화까지 한 데다, 월요일에는 집에 가 있겠다고 자진납세까지 할 정도로 고분고분해졌기 때문이었다. 칼침 맞은 효과는 충분한 셈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책을 들여다 보는 건 역시 익숙하지 않은 모양인지, 수업시간 내내 멍청한 표정으로 엉뚱한 데를 보고 있거나, 내 시선을 피해 하품을 하느라 눈에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그러니 그런 유진을 보면서 나도 그 애에게 필요한 게 뭔지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했다. 그게 뭔지는 몰라도 씨알도 먹히지 않는 공부 따위는 절대 아니었다.



“너는 지금 하고 싶은 게 뭐냐?”

“공부하고 있잖아요.”



“아니... 하고 있는 거 말고 하고 싶은 거 말야.”

“음... 뭐 없어요.”



“만약 내가 지금 수업 끝내 주면, 뭐 할래?”

“끝내줄 거예요?”



“아니... 이를테면...”

“피~~! 나가서 친구들 만나죠, 뭐.”



“보고 싶은 친구가 있어?”

“뻔한 얘들이죠, 뭐. 그냥 집에 있기 싫으니까 나가는 거죠.”



“이제 가출은 안 해?”

“그런 거 얘들이나 하죠! 게다가... 성수 오빠가 가출 더 하면 죽인댔는데, 오빠도 한다면 하거든요.”



유진의 말대로 성수는 한다고 마음먹은 건 꼭 하는 성격이었다. 일이 어렵다 해도 포기라는 건 기어이 본인 스스로 납득할 만큼의 수단을 다 강구해 본 다음에야 인정했으니까.



“왜 그렇게 집에 있기 싫으니?”

“참 나, 오빠도 봤잖아요. 이게 뭐 가정인가요? 오빠 집도 이래요?”



하긴 나도 그 애와 생각이 같았다. 그 큰 아파트에 친하지도 않은 새엄마와 달랑 둘이서만 지낸다면 나라도 바깥으로 나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새엄마를 왜 싫어하니?”

“대답 안할래요.”



“새엄마가 나쁜 여자니?”

“그럼 좋은 여잔가요?”



“너한테 어떤 피해를 주었니?”



유진의 표정이 나를 처음 보았을 때처럼 차갑게 굳었다. 나는 유진이가 미워하는 대상을 명확히 해주고 싶었었다. 유진이가 아빠나 다른 사람에게서 느끼는 분노까지 모두 새엄마에게 표출하고 있을 거라는 것이 내 추측이었고, 유진이와 새엄마의 관계를 좋아지게 하려면 그건 가장 먼저 가려야할 문제였다. 가늘게 떨리고 있는 유진의 입술이 그 애가 화가 나 있다는 걸 표현해 주고 있었고, 그렇게 감정이 격앙될 거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왕 말을 꺼낸 거,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었다.



“꼭 때리거나, 칼로 찔러야 피해를 주는 건가요?”

“그런 건 아니지.”



“정상적인 여자 같으면... 아무리 친자식이 아니어도 그렇지, 남편 아들하고 섹스하나요?”

“뭐..뭐라구?”



“오빠는 내가... 무슨 바본 줄 알아요? 아무 이유 없이 사람 미워하는?”



침착하자, 침착!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방문을 열고 뛰쳐나가는 유진을 잡아 둘 수 있는 적당한 변명이 생각나지 않았다. 우선 나부터도 쿵쿵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사실이 아닐거다...분명히... 유진이가 뭔가를 잘못 본 걸 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사실일 거라는 쪽으로 생각이 옮겨가고 있었다. 사실이라면... 성수에게는 아직 면회가 허락되지 않을 테니, 그걸 확인하려면 새엄마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생각에서 깬 나는 내 몸의 상태를 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심각한 현실을 고민하고 있는데, 고추는 왜 발딱 서있는지... 비디오에서 봤던 성수 새엄마의 육체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녀와 성수가 알몸으로 뒤엉켜 있는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꿈틀거림으로만 보면 그녀가 색녀일 거라는 추측은 할 수 있는데... 며칠 전에 그녀와 나눈 대화로는 그녀가 도저히 의붓아들과 몸을 섞을 수 있는 여자 같지 않았다.







“오늘은 공부하는 날 아니잖아요?”

“저녁에 따로 갈 데 있어?”



“아니, 없지만.”

“그럼 나랑 놀자.”



유진이를 데리고 유미 누나가 다니는 대학교를 찾아갔다. 아는 언니라도 하나 만들어 주면 유진이가 느끼는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을 거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받는 돈의 일부를 떼어달라는 누나의 요구는 농담이었지만, 나는 정말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유미 누나라면 분명 유진을 따뜻하게 대해줄 수 있을 거라는 내 생각은 적중했다. 여자들은 남자들보다는 훨씬 빨리 친해지는 듯. 같이 저녁을 먹을 때는 조금 서먹서먹하던 유진은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실 즈음에는 누나의 옆에 딱 붙어 앉아 참새처럼 재잘대는 것이었다. 누나에게는 단 한 번도 그 밉상스러운 표정마저 보여주지 않았으니, 아마도 누나는 그 애를 세상에서 가장 순진하고 착한 소녀라고 착각할 것이 분명했다.



누나에게 학교를 구경시켜 달라고 조르더니, 컴컴해서 잘 보이지도 않는 캠퍼스를 걸어 다닐 때는 누나에게 팔짱까지 끼고, 나는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였다. 유미 누나나 그 애에게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진에게 필요한 것은 책상머리에 앉아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저렇게 정을 줄 수 있는 사람일 테니. 그렇다면... 흐흐흐,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누나 먼저 들어가. 유진이 데려다 주고 갈게.”

“어머, 오빠 진짜 웃긴다. 오빠 같은 노털하고 같이 다닐 생각 없거든요?”



집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누나에게 내 생각을 말했다.



“누나, 공부는 꼭 도서관에서 하는 거 아니지?”

“응, 뭐 그렇지.”



“유진이 귀엽지?”

“응, 그렇더라. 너 말 들을 때는 희대의 비행소녀 같더니...”



“그러면... 누나가 내 시간 절반만 해 주라. 어때?”

“호호호,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치는구나.”



“돈도 딱 절반! 누나는 같이 않아 공부만 해주면 돼. 가르치는 건 내가 할게.”

“음... 겨우 그걸로 나를 꼬시려고?”



“그럼 어떡해? 뽀뽀라도 한 번 해줄까?”

“응.”



“여기서?”

“응.”



버스에는 얼핏 봐도 스무 명이 넘게 있는 것 같았다. 누나가 애인이라도 거기에서 뽀뽀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 여자가 왜 이렇게 뻔뻔해졌나?



“못해?”



미친 척 하고, 순식간에 입술을 그녀의 볼에 붙였다 뗐다. 마치 변색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붉어지는 누나의 얼굴... 그렀게 수줍어할 거면서 뽀뽀는 왜 해달라고 했을까? 나도 차마 다른 사람들 얼굴을 쳐다보기 힘들어,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도 부끄럽다는 느낌보다는 뿌듯한 포만감이 더했다.



“이제 할 거지?”

“하나만 더....!”



“더듬어 줄까? 큭큭큭.”

“아니... 나중에... 내 소원 하나 꼭 들어준다고 약속해.”



“두어 개 들어줄게.”

“하나면 돼.”



일석 삼조다. 유진이에게는 언니가 생겨서 좋고, 나는 자유가 생겨서 좋고, 무엇보다 집에서도 같이 있기 힘든 누나하고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할 화제가 생겨서 좋았다. 다음 날에는 유진의 새엄마에게 누나를 소개시켜 주기 위해 데리고 갔다. 여전히 그녀는 강적이었다. 내가 하는 설명은 듣는 둥 마는 둥하고, 누나가 그렇게 귀염성 있게 인사를 하는 데도 불구하고, 그저 시큰둥하게 ‘잘 부탁해요’ 한 마디 뿐이었다.



정말 성수랑 잤을까? 지금은 혹시 다른 애인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직장 생활을 하지 않는 그녀였지만, 저녁에 내가 볼 때는 항상 잘 정돈된 머리에, 화장까지 빠지지 않고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낮에 종일 집에 박혀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녀는 바람을 피우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 남편. 아침에 나가 새벽에 들어오는 의붓 딸. 감시자도 없이 하루 종일 철철 넘치는 시간에다, 남자라면 누구나 넘어오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외모... 맘만 먹으면 애인을 천명도 넘게 만들어낼 수 있는 여자였다. 그런데 왜 하필 성수랑 잤을까?



금요일은 시간표 상 누나가 가는 날이라 유진의 집에 가지 않고, 동아리 모임에 참석해 술을 마셨다. 의료 봉사 동아리가 사실 그 시절에 그다지 할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가끔 모임에 도장을 찍는 이유는 어기면 귀찮아지는 위계질서 때문이었다. 휴대폰 벨이 울리자 집중되는 시선... 속물 같은 자만심에 기분이 우쭐했다.



[여보세요?]

[.....]



[말씀하세요.]

[저예요.]



유진의 새엄마가 전화를 하다니, 의외였다. 내가 안가고 누나가 대신 간 걸 따지려고 그러나?



[아.. 어머니.]

[잠깐 와 줄 수 있어요?]



학교에서 유진의 집까지의 거리도 상당한데다, 모처럼 기분 좋은 술자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 주저했다.



[지금.. 좀 곤란한데요.]

[시간은 별도로 쳐 줄게요.]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고...]

[심심해서 그래요. 유진이도 나가고...]



유진이가 나가서 심심하다니! 참 나,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그런 전화를 나한테 걸다니 무척이나 신기하기만 했다. 섭섭해 하는 친구들을 두고 술집을 나왔다. 전에 직장 선배가 부른다고 밤 늦게 선미 누나가 집에서 나가면서, ‘하여튼 여자들이 더해!’하고 투덜거렸던 것이 기억났다. 그때는 광식군하고 데이트할 핑계를 대는 거라고 간주했는데, 실제 직장생활을 하면 나처럼 불려가는 일이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 더럽겠다, 진짜.



유진의 집에 도착해 벨을 눌렀지만, 문을 열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초대해 놓고선 어딜 간 걸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잡이를 돌려봤더니 거침없이 열리는 문...! 순간 그 문이 난희 누나의 아랫도리처럼 느껴졌다. 부엌 식탁 위에 마시다 만 양주병이 보일 뿐, 어디에도 유진의 새엄마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잠깐 나갔나 보지 뭐.



기다릴 셈으로 성수의 방에 들어간 나는 침대에 앉아 있는 새엄마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들어가는 문 소리를 들었을 텐데도 그녀의 시선은 TV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TV 화면에서 또 다른 그녀가 벗은 몸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자신의 정사 장면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여...여기 계셨어요, 어머니?”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유진과 내가 나누었던 그녀와 성수와의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들으셨어요?”

“저 테이프를 보고 성수는 참지 못했어요. 하긴.. 그 나이에 누구라도 저런 걸 보고 참을 수 있겠어요? 게다가 상대는 가족의 행복을 망치고 있는 못된 여잔데...”



“그러면...”

“그이가 집에 오지 않은 새벽에... 성수가 침실로 들어와 제 몸을 더듬더군요. 저는 모른 척 했어요. 그이랑 결혼 하고 겨우 일 년 정도 지난 때지만 그때까지 너무 시달려서... 저도 성수하고 유진이를 미워하고 있었죠. 그래서 내버려뒀어요. 성수를 망가뜨리고 싶었죠.”



그녀의 말 소리 중간 중간에 끊임없이 섞여 들리는 신음소리에 신경이 쓰였다. 화면 속에 있는 또 다른 그녀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격렬하게 허리를 비틀고 있었다.



“성수는 내가 그냥 자는 척 하고 있는 걸 용납하지 않았어요. 계속해서 욕을 하더군요. ‘주 소영, 너는 나쁜 년이야. 갈보 같은 년...’하고요.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고...그에게 시달렸죠. 때리지는 않더군요.”



“....”



“저는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었죠. 그 애한테 복수하고 있었으니까... 망가뜨리고 있었으니까... 제 아비의 아내를 범한 잡놈을 만들고 있었으니까...”



그녀가 화면에서 눈을 떼고 내 얼굴을 쳐다 보았다. 평소와 다름 없은 무표정한 얼굴... 하지만 두 눈만은 달랐다. 나를 쏘아보는 그녀의 두 눈은 뭔가에 불타고 있었다. 화면 속에 있는 그녀의 눈처럼...



“그런데.. 말예요. 이상하죠? 그이하고는 한 번도, 아니 그이 만나기 전에 어떤 남자에게서도... 그런 걸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날 경멸하는 성수한테서 그런 걸 느끼다니...”



그녀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 사이에도 화면 속에서 끊임없이 신음하는 그녀... 내 바로 앞까지 다가온 그녀가 고개를 발딱 쳐들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붉은 입술... 깊은 두 눈... 술 때문에 붉어진 볼... 화면 속의 그녀 때문에 부풀어올랐던 사타구니가 이제는 완전히 뻣뻣한 기둥으로 변해 있었다.



“왜 수호 씨는... 그날 저걸 보고도 참았죠? 친구 엄마라 그런 건가요? 집에는 아무도 없고... 저는 무방비 상탠데... 유진이는 새벽에 들어올 거라고 내가 말해 주었는데도요. 수호 씨가 따라 나와서 날 덮칠 줄 알았어요.”

“저는...”



“저 안아줘요.”

“네?”



심장이 벌떡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그녀를 안아야 할지, 설득해야 할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머뭇거리고 있는 내 앞에서 그녀의 얼굴이 아래로 사라졌다. 세상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내려다 보는 내 시선에 불룩한 사타구니의 융기 뒤로 색정적인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뭔가에 대한 미칠 듯한 욕구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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