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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친야설

수레바퀴 - 9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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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1,105회 작성일 20-01-1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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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 어디라는 신병 교육대까지 따라 가겠다는 나를 성수는 한사코 말렸다. 군대 간다면 입영열차 안에서 손을 흔들고, 바깥에는 환송하는 사람들이 눈물을 줄줄 흘리는 걸 예상했던 나는, 전철타고 가면 된다는 성수의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세상에... 새엄마는 그렇다 치고, 동생이라는 계집애는 최소한 전철역까지는 나와야 인지상정인데... 그 놈의 계집애에 대해 갈수록 정나미가 떨어졌다.



“면회 갈까?”

“아니, 유진이 일 아니면 오지 마. 편지도 쓰지 말고... 휴가 나오면 연락할게.”



“무슨 도 닦으러 가는 사람 같다?”

“응... 도 닦고 올 거야. 개과천선한 새 사람이 되서 나타나려고. 하하하!”



웃고는 있지만, 결심이 어느 정도 서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서둘러 군대를 간 건 그 동안 삐뚤어졌던 삶은 조금이라도 일찍 되돌려보고자 하는 시도였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그저 고개만 잠깐 숙였다 올리고는 자신의 할 일은 다 했다는 듯,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성수의 새엄마... 출렁거리는 길다란 원피스 자락 위로 언뜻언뜻 노출되는 몸매의 윤곽은 훌륭하기 그지 없었다. 사실 새엄마와 성수가 그 동안 어떤 관계였는지, 나는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그런 그녀의 태도를 볼 때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그래도 다른 아르바이트 학생에 비해 세 배는 비싼 내 몸 값을 성수의 말만 듣고 지불하겠다고 한 것은 의사소통은 충분히 된다는 뜻인데... 그녀의 그런 반응을 예상하고 미리 뱃속에 곡기를 채우고 온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그렇게 늦장을 피웠는데도 아직 유진이가 돌아오려면, 30분이나 남은 걸 보면... 첫 아르바이트라 내가 긴장하긴 긴장한 것이었다.



성수의 방 침대에 죽치고 누워 리모콘으로 채널을 여기저기 돌려보다 책장 아래의 문에 시선이 쏠렸다. 빽빽이 꽂힌 테이프 중에 아무거나 집어 들고 VTR 기계에 집어 넣었다. 웨딩 드레스를 입은 여자와 카우보이 모자를 쓴 좀 늙은 남자... 미국 놈들 상상력이야 뭐 그렇지. 내가 만들면 저보다는 자극적일텐데... 역시 포르노도 스토리가 좀 있어야 해.



꽤 비싸 보이는 자동차의 보닛에 구부린 여자의 뒤로 다가간 남자가 길다란 자지를 쥐고 엉덩이 사이에 밀어 넣었다. 여자... 혀도 내밀고 고개를 쳐드는가 하면 지 손가락을 빨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저런...저런... 쟤들은 항상 저래! 다음에는 당연히 클로즈 업이겠지? 역시...! 포르노를 많이 본 편이 아닌 나도 카메라의 다음 앵글을 예상할 수 있었다. 미국 놈들은 저런 걸 보면서 서기는 서는 걸까?



하품을 하면서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허리를 일으켜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린 나는, 미처 입을 다물 사이도 없이 재빨리 리모콘을 쥐고 TV를 껐다. 으아... 이게 뭔가? 첫 날부터...! 후다닥 침대에서 내려와 그녀를 마주 봤지만, 얼굴이 화끈거리는 게 거울을 보지 않아도 색깔이 어떨 지는 눈에 선했다.



“어..어머님...!”

“미안해요. 노크 안 해서...”



그녀의 목소리는 그저 매몰차고, 인정 없는 차가운 목소리일 거라는 내 예상은 빗나갔다. 그녀의 음성은 무척이나 다정했다! 그래도 얼굴은 아무 것도 못 봤다는 듯 무표정하기만 했다. 그녀가 들어온 걸 눈치 채지 못하다니... 부주의한 내 잘못도 있지만, 성수의 방 구조 때문이기도 했다. 침대에 누우면, 아무리 고개를 돌려도 불룩 튀어나온 기둥에 가려 문 쪽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조..조금 시간이 있어서요...”



시키지도 않는 변명을 하는 나에게 그녀가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뭔데요?”

“한 달 치예요. 혹시 한 달 후에 내가 잊어버리면 달라고 하세요.”



“이런 건 끝나고 받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먼저 주래요, 성수가.”



“가..감사합니다.”



그걸로 용건은 끝났다는 듯 아무 말 없이 돌아서서 나가버리는 그녀... 만약 그녀가 그 동안 성수하고, 유진에게도 저런 태도였다면, 나 같아도 가출은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원래 성격이 저런 건지.. 아니면.. 집에서만 저러는 건지... 성수 아버지는 도대체 저런 여자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을까?



“빨리도 왔네.”



요런 싸가지 없는 계집애 같으니라고... 약속 시간에서 20분이나 늦게 들어와 가지고... 하지만 처음부터 꼬라지를 부릴 수는 없어서 애써 미소를 지으며 반겨주었다. 그 애는 나를 힐끗 보더니 방으로 휙 들어가 버리고, 지 엄마한테는 왔다는 말도 안했다. 하긴, 딸이 돌아왔는데도 얼굴 한 번 내보이지 않는 엄마도 다를 바 없었다. 성수 이 망할 녀석이 선불을 주라고 한 이유가 이걸까? 내가 질려서 그만 두기라도 할 까봐?



“옷 갈아입잖아요!!”

“어, 미안.”



초반부터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얘 엄마한테는 포르노 보고 있는 장면을 들키고, 얘한테는 옷갈아 입는 장면이나 훔쳐보는 치한이 되었으니...



“다 입었으면 말해.”

“씻을 거예요!”



“끝나고 씻어.”

“아유, 정말 짜증나!!”



우여곡절 끝에 식탁에 마주앉게 되었지만, 그 애도 나도 씩씩거리고 있었다. 어느새 약속한 한 시간이 거의 다 흘러가고 있었지만, 내 자존심은 그냥 끝내 주고 싶지 않았다.



“담배 꺼!”

“다 끝났잖아요.”



“아직 시작도 안했어. 시작하고 나서 한 시간이야.”

“참 나, 열성 교사 나셨네.”



“오늘은 처음이니까 이야기나 하자.”

“수호 씨!”



“오빠라고 불러.”

“좋아요, 수호 오빠. 괜히 오버하지 마세요오~! 오빠가 뭐라 해도 전 제 마음대로 할 거예요. 그러니까 오빠도요, 그냥 시간만 채우고 돈이나 받아가세요. 네?”



말라깽이 계집애가 보통이 아니었다. 자신이 제 멋대로 하더라도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여자를 상대로 투지가 솟은 것은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다. 기왕에 맡은 이상, 책임감이 아니라, 자존심 때문이라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너 말야. 내 말 잘 들어라.”

“.....”



“내가 널 뒈지게 패 놓아도, 너네 오빠한테 절대 싫은 소리 듣지 않는다. 너도 너 마음대로라고 했지? 나도 마찬가지야. 내 맘대로 해보다가 안 되면 포기해 버리지 뭐. 그런다고 한 주먹 꺼리도 안 되는 너네 오빠가 나한테 뭐라고 항의할 수 있을 것 같아?”



계집애의 표정이 울긋불긋 한 게 열을 받은 것 같았지만, 개의치 않고 말을 계속 이었다.



“나도 성수 부탁만 아니면 너 같은 녀석 상대도 하기 싫거든? 그러니 괜히 개기다가 이 오빠 꼬장 부리고 싶게 만들지 말아라. 얌전히만 하면 아무 일 없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말 안 들으면 때리기라도 하겠다는 거예요?”



“어, 그 말이야, 똑똑하네. 여자한테 힘 쓰는 거 싫어한다만, 내 눈에는 너, 여자로 안보이니까.”

“흥, 별꼴이야!”



“두 가지만 지켜주면 된다. 첫째, 수업 시작 전에 항상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을 것. 둘째, 수업 시간에는 얌전히 공부만 할 것. 그것만 지키면 나머지는 너 마음대로 해도 좋아. 그게 안 지켜지면... 각오 해!”



집이라는 게 누구든 밖에 나가도 돌아오고 싶은 분위기여야 하는데... 집에 있는 엄마라는 사람이 그런 상태라면, 내가 아무리 유진이를 다그쳐도 그 계집애의 행동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겨우 두 번 가본 나마저도 그 집에서 나올 때는, 마치 감옥에서 벗어난 듯 홀가분한 기분이었으니, 그 애의 심정을 알 것도 같았다.



의예과의 강의라는 게, 나중에 의학과에서 배울 내용하고는 거의 관련이 없는데다, 의예과의 성적이 나중에 진로를 선택하는 데 있어 전혀 영향을 미치지도 못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러니 학교 당국에서 제 아무리 기발한 방법을 써 보아도, 일부 뜻 있는 학우들을 제외하고는 학업에 관심을 쏟을 리가 없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기계발’이라는 미명 하에 쓸데없는 데 관심을 기울이거나, 여기저기 몰려다니며 어떻게든 건수를 만들어 놀기 바빴다. 나 같은 부류의 학생들은 강의가 없을 때는 그저 잔디밭 같은 데서 빈둥거리다가, 그 날 강의가 끝나기 무섭게 사라지는 쪽이었다.



오전 강의 밖에 없던 그 날은 기특하게도 집으로 가지 않고, 유미 누나가 다니는 대학교를 향했다. 아르바이트 비용을 선불로 받아 호주머니가 두둑했으니, 모처럼 누나에게 선물도 좀 사주고, 저녁이라도 같이 먹고 들어갈 참이었다. 약속은 안 했지만, 누나에게는 오후 강의가 있다는 걸 확인해 두었기 때문에 깜짝 놀라게 해 줄 셈이었다.



강의동 입구가 보이는 나무 그늘에서 조금 시간을 때우고 기다리자, 시간에 맞춰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 그리고 그 가운데 유미 누나도... 암만 봐도 유미 누나보다 더 예쁜 여자가 없는 것은 아마 내 눈에 콩깍지가 씌워져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다가가려는 데, 나보다 먼저 누나 앞에 마주 서는 남자가 있었다.



진규라고 했던가? 예전에 누나를 따라다닌다던, 그 과 선배라고 했던 사람이었다. 역시 한 번 보면 잘 안 잊는 내 총명함... 누나와 그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더니, 누나가 먼저 걸음을 옮기고 그 사람이 누나의 두어 걸음 뒤에서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아는 척을 할까, 말까? 누나가 점점 가까워지자 나는 내 팔뚝 굵기 밖에는 되지 않는 나무줄기를 방패 삼아 몸을 돌렸다. 둘이 사귄다면 훼방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여전히 그저 누나를 일방적으로 따라다닌다면,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지 두 달이니, 그는 정말로 집념의 사나이였다. 누나를 가져도 될 만큼...!



누나가 사랑한다는 그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지는 몰라도, 내가 보기에는 그 진규라는 사람이 누나에게는 훨씬 더 현실적이었다. 그래서 그냥 그 날의 데이트는 포기하고 그 사람에게 기회를 주려는데..,



“수호 씨!”



들켰네...! 돌아본 내 눈에 누나가 길을 벗어나 잔디밭을 뛰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런 누나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진규 씨. 그런데, 수호 씨라니? 더 놀라운 것은 뛰어온 누나가 주저 없이 내 목에 팔을 감고 몸을 붙여오는 것이었다. 얼떨결에 누나를 안았지만, 지나가면서 우리를 힐끗힐끗 쳐다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왜 그냥 기다리지 않고 여기까지 왔어, 수호 씨!”



오랜 동안 유미 누나와 같이 살아온 나는 멀리서 듣고 있는 진규 씨의 귀에 들릴 만큼 큰 누나의 그 말이 과장되어 있다는 걸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유미 누나는 팔짱을 끼우더니, 몸을 착 붙이며, 진규 씨의 앞까지 나를 끌고 갔다. 나를 이용해 불쌍한 진규 씨를 떼내어 버리려는 심산이었다.



“수호 씨, 인사해. 우리 과 선배, 진규 오빠야.”



진규 씨는 예전에 슬쩍 본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내 얼굴을 쳐다보는 그의 눈에 순간적으로, 절망이 스치고 지나갔다.



“처음 뵙겠습니다.”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무슨 말씀을 많이 들었다는 건지... 남동생 이야기였을까, 아니면 누나가 사랑한다는 그 사람? 진규 씨는 분명히 나를 누나의 연인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수호 씨는 의대 다녀요.”



불필요한 유미 누나의 말은 듣는 사람에게 거부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애인이 앞으로 의사가 될 사람이니 감히 접근하지 말라고 일부러 한 말이겠지만, 누나를 남자의 조건이나 따지는 속물로 보이게 하는 데도 효과가 그만이었다.



“저희 먼저 갈게요, 진규 오빠. 가자, 수호 씨.”



멀거니 우리를 쳐다보는 진규 씨를 뒤로 하고, 누나와 나는 교문을 향해 걸었다. 그의 시선이 차단된 후에도 누나는 여전히 내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



“됐어, 이제. 그만 해, 누나.”

“뭘?”



“팔짱 빼도 된다고...”

“그냥 이렇게 가자, 싫어?”



“누나가 이상하게 느껴져. 좀 너무 했어.”

“그게 나아. 나한테나... 진규 오빠한테나...”



“왜 그냥 사귀지 그래?”

“진심이니?”



“좋은 사람 같던데...”



나는 대답을 회피했다. 누나가 전에 내게 했던 말이 기억났다. ‘네가 시키는 대로 할게..!’ 설마 내가 진심이라고 말한다 해도 누나가 ‘그럼 사귈게’하지는 않겠지만, 아직은 누나를 향해 조금은 열려 있는 내 마음은, 선뜻 대답을 하게 하지 않았다.



“근데 오늘, 어쩐 일이야? 나 보러 온 거야?”

“응, 참. 우리 백화점 가자.”



“백화점? 무슨 일 있어?”

“내가... 흐흐흐... 떼돈을 벌었잖아. 누나 뭐 필요한 거 있어?”



“어머나! 나 필요한 거 많아. 핸드폰도 있어야 하고, 차도 한 대 있었으면 좋겠어.”

“그럼...뭐. 속옷이나 한 벌 사줄까?”



“어유, 응큼해라!”

“가자. 유미 씨.”



여자들은 백화점에 가면 정신을 못 차린다더니, 항상 수수해 보이던 유미 누나도 별 수 없었다. 사지도 않을 물건을 이리저리 만져보는 누나나, 안 살 줄 뻔히 알면서도 친절하게 설명을 아끼지 않는 종업원이나... 누나의 모습은 행복해 보였다. 특히, 남자 친구가 잘 생겼다느니, 애인이 멋있다느니 하는 입에 발린 말을 들으면, 얼굴이 빨개질 만큼 좋아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선미 누나의 선물까지 고르고, 마지막에 유미 누나의 가을 스웨터를 사는 데까지, 백화점을 두 바퀴는 돈 것 같았다. 속옷 매장 앞을 지나다, 장난삼아 누나에게 말을 건넸다.



“섹시한 속옷 한 벌 사지. 여보!”

“누가 쓸 건데? 나 아니면 너?”



나도 내 마음을 잘 알 수 없었다. 며칠 전만 해도 유미 누나를 마음 속에서 밀어내려고 그렇게 힘겨워 했건만, 자신의 곁에 있어달라는 누나의 한 마디가 그 노력을 순식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마음 뿐 인데 뭐 어때...! 누구든 다른 사람을 마음대로 사랑할 권리는 있는 거다.



“같이 쓰지...뭐. 누나가 한 번만 입고 주던지... 크크크.”

“변태야, 진짜.”



그냥 아무거나 먹자는 유미 누나를, 전에 광식 군이 저녁을 사 주었던 레스토랑까지 억지로 끌고 갔다.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는 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핏물이 줄줄 흐르는 고깃덩어리를 잘도 삼키는 누나의 작고 붉은 입술... 야채도 좀 먹으라며 포크가 휘어질 만큼 샐러드를 퍼서 내 입에 밀어 넣으려는 누나의 공세... 와인을 한 잔 더 마셔도 돈을 더 받지 않느냐는 호기심어린 질문... 그냥 그대로 다 좋았다. 그 시간에는 내 앞에 누나가 아닌,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여자 김 유미만 있었다.



“이게 뭐야?”

“누나 목이 허전해 보여서...”



약간은 젖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얼굴을 붉히는 걸 보면, 아마 조금은 내 선물에 감격한 것 같았다. 작은 하트가 달린 그 금목걸이는 고를 때는 단조롭고 투박해 보였지만, 누나의 목에 걸리니 주먹만 한 다이아먼드 목걸이보다 더 품위 있어 보였다.



집에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누나는 아무 말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벌써 졸려?”

“아... 안돼. 말 하지 마! 깨고 싶지 않아.”



감긴 두 눈 아래의 깨끗하고 하얀 볼에, 입술을 대고 싶은 욕구를 꾹꾹 눌러 참았다. 뺨에 키스를 하면, 입술에 하고 싶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그녀를 안고 싶을 테니까... 처음에 참는 것이 제일 나았다. 그런데 누나가 그런 내 마음을 알았을까? 머리가 등받이에서 떨어진다 싶더니, 누나의 입술이 살포시 내 뺨에 닿았다.



“수호야!”

“응?”



“돈 많이 벌어라.”

“응.”







이 망할 놈의 계집애가... 그렇게 알아듣게 이야기를 했건만... 마치 나를 비웃는 듯, 바람을 맞춰버린 것이다. 시계바늘은 벌써 8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는데, 유진이는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성수의 방에서 서성이며 나는 대책을 짜내려 애를 쓰긴 했지만, 사실 내가 그녀에 대해 가진 무기라고는 고작, 고되게 훈련 받고 있을 성수에게 고자질하는 것 뿐이었다.



역시 엄마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으니, 자식을 통제할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고용인이라는 한계를 벗어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밖에는 없었다. 내가 진짜 오빠, 임 성수보다 더 독한 놈이라는 걸 보여줘야 했다.



[임 유진이요? 몇 반인데요?]

[3반이라고 하던데...]



[3반이면, 최 수진 선생님 반인데... 근데 어떡하죠? 지금 교무실에 안 계시는데?]

[급한 일인데... 어떻게 연락 안 될까요?]



[학생하고 어떻게 되시는데요?]



전화를 끊어버렸다. 성질 같아서는 당장 학교로 찾아가고 싶었지만, 학교에 있을 가능성도 희박한데다, 길이 엇갈릴 수도 있어 기다리기로 했다. 유진이의 새엄마는 행방불명이 된 딸이 걱정도 되지 않는 듯 했다. 도대체 침실에 뭐가 있길래, 방에 박혀 나와 보지도 않는 걸까?



오냐, 오늘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그냥 기다리기도 지루하고 해서, 다시 성수의 책장 문을 열었다. 테이프를 고르기 전에 문이 확실히 잠겨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 날마저 걸린다면 포르노 따위에나 관심이 있는 지저분한 녀석으로 간주될 테니까...



뭔가 좀 쇼킹한 거 없나? 한쪽 구석에 볼펜으로 별 표시를 해 놓은 테이프가 눈에 띄었다. 성수도 그 비슷비슷한 테이프에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 모를 테니, 특별히 마음에 드는 건, 그렇게 표시해 놓은 게 틀림없었다. 그걸 VTR에 넣고 침대에 몸을 눕혔다.



역시... 시작부터 남달랐다. 연출된 촬영장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부부의 침실인 듯 했다. 아마.. 화장대 위에 카메라를 놓아둔 듯... 몰래 카메라라는 걸 주장이라도 하듯, 앵글은 고정이 되어 있었고, 흔들림도 없었다. 내 눈에는 침대에 엎드려 있는 여자의 커다란 엉덩이가 보였다. 가운데가 갈라진 만두랄까?



웅크린 여자의 양 옆으로는 사내의 두 다리가 쭉 뻗어 있었고, 위 아래로 움직이는 여자의 머리가 간혹 엉덩이의 경계를 넘어 내 눈에 비쳤다. 오럴 서비스를 하고 있구나...! 자지가 불끈 고개를 쳐들었다. 역시 동양 여자가 최고야. 내 멋대로 그 여자를 우리나라 여자라고 간주하고 나니, 흥분이 더 했다.



여자가 허리를 세워 앉았다. 여자의 뒷모습은 감탄스러웠다. 모래시계처럼 잘록한 허리에서 양쪽으로 퍼져 오묘한 곡선을 만들고 있는 둔부... 저런 여자에게 오럴 서비스를 받는 행복한 남자도 있다니... 꿈틀거리며 움직이더니, 남자의 허리 위에 걸터 앉았다. 연출이 아닌 건 확실한 것 같았다. 연출이라면 그렇게 잘 보이지도 않는 자지를 가진 남자를 배우로 쓸 리가 없었다.



그 자지를 손가락으로 쥐고, 자신의 중심의 맞춘 후 허리를 낮추는 여자의 움직임은 기계적이었지만 내 눈에는 충분히 음란해 보였다. 리모콘을 쥐고, TV의 볼륨을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을 만큼만 키웠다.



지금이야 인터넷에 별 종류의 동영상이 다 돌아다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본다는 자체가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그런 종류의 도촬 영상을 보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웠다. 그러니 나는 그 화면에 몰입할 수 밖에 없었다. 여자의 낮은 신음소리... 우리나라 여자가 분명했다. 자기는 이미 부러질 만큼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여자의 움직임은 환상 그 자체였다. 서툴게 방아를 찧으며 끙끙거리는 애로 비디오의 여자 주인공들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사람의 허리가 어떻게 저렇게 뱀처럼 움직일 수가 있을까? 난희 누나도 내 위에 올려놓으면 저렇게 움직일까? 움직임 만으로만 본다면, 그녀는 전문적인 포르노 배우이거나,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의 섹스 경험을 가지 여자가 틀림없었다.



청바지의 자크를 조금 벌려, 답답함을 호소하는 자지를 풀어 주었다. 기다렸다는 팬티 위로 고개를 내미는 붉은 뱀대가리... 녀석을 매만져 주고 싶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딸딸이를 칠 수는 없었다. 그 때라도 현관문이 열리는 기색이 보이면, TV를 끄고 뛰쳐나가 유진이를 야단쳐야 했으니까...



낮은 소리로 끊임없이 신음하던 여자가 드디어 몸을 일으켰다. 집을 잃어버린 남자의 자지가 옆으로 갸우뚱거리며 무너졌다. 그다지 젊고 힘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저 정도의 크기로도 여자가 저렇게 야릇한 신음소리를 낼 정도라면, 어느 잡지에서 봤던 것처럼 여자의 쾌감은 성기의 크기와 무관하다는 말이 맞는 듯 했다.



여자가 카메라 쪽으로 몸을 돌리기 시작했다. 기대했던 것만큼 풍성한 젖가슴... 아니 풍성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이어지는 어깨와 배의 곡선과 기가 막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유난히 움푹 들어간 그녀의 중심선은 유방을 더 도드라지게 보이게 하고, 여자를 마치 사람보다는 동물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세상에 저런 몸매도 있구나...! 아랫배까지 이어지는 두 줄기의 근육의 융기 바로 밑에서는 삼각형 모양으로 예쁘게 다듬어진 검은 수풀이 그녀의 하얀 피부와 대비되어 유난히 시선을 자극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손으로 다시 남자의 자지를 쥐고 자신의 구멍에 맞추고 있었다. 얼굴을... 들어 봐.. 얼굴을...!



드디어 여자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그녀가 미인이라서가 아니었다. 자존심이 세다는 걸 표시해 주는 갸름하고 오똑한 콧날, 움푹 패여 들어간 두 눈... 그 위의 진한 눈썹... 나는 침대에서 허리를 일으켜, 고개를 앞으로 내밀고 눈이 빠져라, 여자를 쳐다 보았다.



숨이 탁 막혀왔지만, 호흡을 진정시킬 엄두도 내기 어려웠다. 쌍둥이가 아니라면 그렇게 닮을 리가 없었다. 아니 쌍둥이라도 그렇게 똑같을 수는 없었다. 화면 속의 여자는 조금 전에 시큰둥하게 현관문을 열어주었던 그녀, 성수의 새엄마가 틀림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헝클어졌다. 저걸 어떻게 성수가 가지고 있을까? 아직 얼굴을 모르는 화면 속의 남자는 성수의 아버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성수일지도 모른다는 방정맞은 생각이 들었지만, 예전에 그 녀석 고추의 생김새를 본 터라,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성수는 새엄마와 아빠의 정사를 그들 몰래 촬영한 것이거나, 아니면 촬영한 필름을 훔친 것이었다. 누가 되었든 저런 걸 왜 촬영했을까? 덩치 큰 캠코더를 저렇게 침실의 화장대에 올려 놓았다면, 아무리 잘 숨겨도 최소한 그 둘 중의 한 명은 발견했을 텐데... 아빠야 가끔 들어오시니까 그렇다 치고, 허구헌 날 침실에 죽치고 있었을 새엄마가 방에 생긴 작은 변화라도 놓칠 리가 없었다.



그제서야 화면 오른쪽 아래에 하얗게 나오는 숫자에 관심이 쏠렸다. 촬영한 날짜는 일 년 전쯤, 우리가 고등학교 3학년에 다닐 때였다. 짜식이 공부는 안하고 비디오 촬영하는 데 아주 맛을 들였었구먼...! 화면 속의 성수 새엄마는 여전히 고개를 뒤로 발딱 젖힌 채, 뱀처럼 허리를 돌리면서, 앓는 듯한 신음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나는 다시 몸을 뒤로 기대고, 그녀의 요란한 몸부림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저것 때문에 성수 아빠가 저 여자랑 결혼한 것일까? 그녀의 고개가 점점 정면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 마치 실제 그녀가 나를 쳐다보는 듯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그녀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촬영되고 있다는 걸... 그녀가 찍었든, 아니면 다른 사람이 찍어든... 그런데도 저렇게 노골적인 성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카메라를 주시하는 그녀의 두 눈이 절반쯤 감기더니, 고개가 모로 틀렸다. 일부러 느낌을 과장하고 있는 듯... 하지만 꾸몄다 해도, 그 표정은 퇴폐적이고 음란하기 그지 없었다. 절반쯤 벌어진 입에서는 끊임없이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고...



나는 팬티 밖으로 삐져 나온 자지를 힘겹게 밀어 넣고 청바지의 자크를 올렸다. 그걸 더 이상 봤다가는 딸딸이를 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 같았다. TV 앞으로 다가가 전원을 끄고, 테이프를 꺼낸 다음 그걸 다시 원래의 자리에 꽂아 놓았다. 이런 걸 버젓이 다른 테이프랑 꽂아 놓다니... 멍청한 새끼 같으니라고...!



몸을 일으켜 고개를 돌린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히 문을 잠궜는데... 환상일까? 그녀의 현란한 정사가 워낙 충격적이라 현실에서도 보이는 걸까? 조금 전에 화면에서 봤던 그 여자가, 문 앞에 기대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너무나 가혹한 우연이었다. 소름이 쫘악 끼치더니, 몸이 나락으로 추락하는 듯 어질어질하기만 했다.



도대체 뭘 어떻게 수습해야 할 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니 그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그녀의 처분 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장면을 아들의 친구가 봤으니, 얼마나 수치스러울까? 아니 어쩌면, 성수에게 그런 테이프가 있다는 것조차 그 동안 그녀는 모르고 있을 수 있었다.



그녀를 멍하니 쳐다 보면서도, 나는 그녀가 봤을 내 작태를 되돌려 떠올리고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비디오를 끄기 전에 거기 서 있었던 게 분명했다. 문 여는 소리를 못 들었기 때문에... 그러면 내 시선이 뚫어지게 화면에 박혀 있었던 걸, 그녀도 봤을 터였다. 내가 자지를 밀어넣고 청바지 자크를 올리는 것도... 아니, 그 전에 똘똘하게 뭉친 내 좆 대가리가 팬티 위로 고개를 쳐들고 있는 것도...



끔찍했다. 어떻게든 그 자리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그런데 성수의 새엄마는 태연하기만 했다. 아니, 그 전에 포르노를 보고 있던 나를 봤던 때처럼 전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런 걸 보여도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그녀가 입을 열기 전의 몇 초가, 마치 수 시간처럼 느껴졌다.



“앓는 소리가 들려서.. 무슨 일 난 줄 알고..”



그녀의 손에 방 열쇠가 들려 있었다. 자신이 냈던 신음소리도 못 알아 듣다니...



“여기요.”



나는 터덜터덜 그녀 앞까지 걸어가, 그녀가 내미는 것을 받아 들었다.



“번호는 뒤에 적혀 있어요.”

“이걸.... 왜?”



“성수가 가기 전에... 말해 놓은 거예요. 요금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저... 어머니...!”



“유진이는 새벽에나 들어올 거예요. 어쩌면 안 들어올 지도 모르고... 그러니 오늘은 그만 가요.”



그녀가 고개를 돌렸고, 내 앞에서 문이 딸깍하고 닫혔다. 눈앞이 캄캄했다. 연타석 홈런이구나..., 젠장...! 그것도 두 번째는 만루 홈런...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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